<유럽연합(EU)은 하노이 북미정상 회담에 대해 왜 침묵하였을까?, 도종윤 제주평화연구원 지역통합연구부장

<목차>

   1. 머리말
   2. 유럽 언론의 반응: 관심은 있었지만...
   3. 허무한 반전 외교: 그러나 침묵은 반전이 아니다
   4. 마무리: 침묵이 만든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한 노력


1. 머리말​

우리의 주목을 끌었던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끝난 지 어느덧 두 주일이 지났다. 시간이 흐른 만큼 회담에 대한 분석도 비교적 냉정해지고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일은 이 회담에 대해 EU가 아무런 성명(statement)도 내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른 주요국들이 즉각적인 반응을 내놓은 것과는 대비되는 모습이다.

회담이 끝난 2월 28일, 중국은 외교부 대변인을 통해 “북미가 대화를 유지하면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추진하기를 희망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러시아는 외무성 대변인 브리핑에서, “중-러가 제안한 구상에 따라 정치적·외교적 진행이 긍정적인 흐름으로 이어지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며, “러시아는 한반도의 포괄적 안정을 위해 다른 파트너들과 다자적 협력을 강화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논평하였다. 일본 역시 외무성 발표를 통해 미·일 정상 간 전화회담이 있었음을 공개하고, “한반도의 비핵화 실현을 위한 굳건한 결의와 더불어, 북한의 구체적인 행동을 요구한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을 지지한다”고 언급하였다. 일본은 가나수기 겐지(金杉憲治) 외무성 국장을 하노이에 파견해 회담 관련 정보를 수집 할 만큼 이번 정상회담에 큰 관심을 보였다.

이처럼 한반도 주변국들이 회담에 대한 자국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발표하였다. 그런데 유럽연합은 달랐다. 회담 기간은 물론이고 이후에도 유럽 대외 관계청(EEA)이나 각료이사회(the Council of European Union)에서는 별다른 성명이나 논평을 내지 않았다. 이는 지난해 있었던 6.12 북미 회담 때와는 사뭇 다른 태도다. 비록 EU가 한반도 주변 4강은 아니지만, 한반도에서 큰 변동이 있을 때마다 성명이나 논평을 내면서 국제사회의 주의를 환기시킨 바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달라진 걸까? 이번에는 왜 아무런 반응을 드러내지 않았을까? 북미 정상회담은 그들에게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향후 무엇을 기대할까? 그리고 우리는 여기서 유럽연합의 무엇을 읽어야 할까?

2. 유럽 언론의 반응: 관심은 있었지만...

EU의 ‘공식적인 무반응’과 마찬가지로 유럽 소식을 전하는 많은 주요 언론들- Euobserver, EUbusiness, EurActiv 등-도 북미 정상회담을 다루지 않았다. 이들은 지난 6.12 정상회담 때에는 짧게나마 관련 내용을 다룬 바 있다. 유럽을 전반적으로 아우르는 언론 중 오로지 POLITICO(유럽판)만이 하노이에 특파원을 파견하여 회담 소식은 물론 회담이 성과 없이 끝낸 이유를 비교적 비중 있게 다루었다.

비록 EU가 무반응으로 북미 정상회담을 흘려보냈지만, 회원국 언론들은 관련 내용을 비교적 자세히 보도하였다. 프랑스의 르몽드는 회담이 결렬된 후 속보를 내보내며, “김정은을 만난 트럼프 외교가 헛된 일(en vain)” 이 되었으며, “트럼프는 자신의 순진함 때문에 희생당했다”고 보도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설에서는 비교적 희망적인 면을 지적하였다. “회담을 준비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고, 미국과 북한이 비핵화에 대해 서로 다른 정의를 내리고 있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비교적 겸손한 태도를 보였으며 미국과 북한이 여전히 대화의 채널을 가동할 여지를 남겨두었다”고 평가하였다. 독일 일간지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자이퉁은 회담에 대해 “마지막 날까지도 양측이 서명 테이블을 준비한 이유가 불분명하다. 아마도 폼페오는 김정은만이 중요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던 듯하다. 북한 측 협상 대표는 영변에서 핵시설의 어떤 부분을 제거할 수 있는지 (자기 결정으로) 사전에 미리 합의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하였다. 또한 영국의 가디언은 “베트남 정상회담은 실패이며 두 정상은 (실패이유에 대해) 서로 다른 설명을 내놓고 있다”고 전하면서, “회담의 중단은 제재 해제를 통해 남북 간 무역과 투자를 추진하려던 문재인 대통령에게 정치적 수난(disaster)이 되었다”고 평가하였다.

3. 허무한 반전 외교: 그러나 침묵은 반전이 아니다

 일부 유럽 언론에서 하노이 정상회담을 다루었으나 유럽 각국의 외무성은 이번 회담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이는 EU의 반응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EU가 성명을 내지 않은 이유를 전략, 외부 환경, 역할 측면에서 추정해 보면 다음과 같이 구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① 전략의 부재: 먼 곳에서 친구가 왔으나 왜 왔는지 알 수가 없다

하노이 회담에 앞서 미국과 유럽이 한반도 전략에 대해 얼마나 교감을 가졌는지 의문이다. 6.12 정상회담의 경우, 그보다 사흘 앞서 열린 G7 회담에서 유럽은 북미 정상회담에 상당한 관심을 표시하였다. 때문에 유럽이 중심이 된 G7 정상들-이때 트럼프는 회담장을 박차고 나가서 유럽이 매우 불쾌해 했음에도 불구하고-은 북미 회담에 대한 기대감을 성명서로 표시하기도 하였다. 또한 유럽-미국관계가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경색되어 있지만 폼페오와 유럽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작년 4월 의회 인준이 끝나자마자 폼페오 장관이 곧 달려간 곳이 브뤼셀이었다(이후 중동 순방이 이어졌다). 작년 가을 브뤼셀에서 열린 ASEM 정상회담에도 달려가서 비공식적이나마 정상들을 만나기도 하였다.

 이번에도 하노이 정상회담에 앞서 미국은 유럽에 회담 전략을 설명했을 가능성이 높다. 2월 15일, 폼페오 장관은 브뤼셀을 방문하여 모게리니 EU외교 대표와 만남을 가졌다. 당시 안건은 베네수엘라 사태, 우크라이나 문제, 그리고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었다.또한 2월 15-17일까지 뮌헨 안보 회담에서는 유럽과 미국의 안보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미국에서는 펜스 부통령이 참가하였고 유럽은 주요 정상들이 모두 모였다. 충분한 교감의 기회가 있었다. 더 나아가 폼페오 장관은 10-14일까지 동유럽(헝가리, 슬로바키아, 폴란드)을 순방했으며 대한민국의 강경화 외교장관을 바르샤바에서 만나기도 하였다. 이처럼 폼페오를 비롯한 미국의 대외 전략 담당자들은 하노이 회담에 앞서 그들의 전략을 유럽과 충분히 공유할 시간이 있었다.

그렇다면 EU는 왜 하노이 정상회담에 대해 관심이 없었던 것일까? 한 가지 추정은 EU가 미국으로부터 하노이 정상 회담에 대해 인상적인 전략을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즉 회담을 두 주일 앞둔 시점까지도 미국 국무장관은 하노이 회담에 대해 어떤 구체적인 전략을 EU에 설명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EU로 하여금 북미 회담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 어떤 평가도 내릴만한 여지를 주지 못했다. 회담이 끝난 후 미국은 북한의 핵 능력을 기준으로, 북한은 핵시설이 설치된 장소를 기준으로 의견이 불일치했다고 서로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EU입장에서는 사전에 알려진 구체적인 전략도 없었고 사후에도 합의된 서명이 도출되지 않았던 회담에 어떤 평가도 내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즉 없었던 일과 같았던 허전한 반전 외교에 어떤 반응도 필요치 않았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EU는 향후 미국의 대북 전략에 지속적인 의문을 품을 것이다. EU는 여전히 CVID와 인권을 북한의 제재완화 조치와 연계된 주요 목표로 보고 있다. 그리고 미국의 전략에 이러한 원칙이 제대로 투영이 되었는지를 평가의 핵심으로 삼을 것이다.

② 나비는 카슈미르에서 날아왔다: 인도-파키스탄 분쟁

하노이에 혼돈을 일으킨 나비는 미국 의회의 마이클 코언(Michael Dean Cohen) 청문회에서 날아 온 듯하지만, 유럽에 무관심을 일으킨 나비는 뜻밖에도 서남아시아의 카슈미르에서 온 것이었다. 국내에는 크게 보도되지 않았지만 적어도 유럽에서는 하노이보다 카슈미르가 큰 관심사였다.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기 직전인 26일, 인도 공군은 미라주2000 12대를 동원하여 파키스탄 령 카슈미르주의 테러리스트 단체 ‘자이시 에 무함마드(Jaish-e-Mohammed)’ 캠프에 1,000kg 상당의 폭격을 가하였다. 이로 인해 수백 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의 공습은 같은 달 14일 인도의 잠무-카슈미르 지방 풀와마(Pulwama)에서 있었던 테러로 인도 경찰 40여 명이 사망한 것에 대한 보복이었다. 공습 후 파키스탄 역시 인도의 공격이 재발될 시 응수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긴장이 높아졌다. 이는 1971년 양국이 설정한 정전선(停戰線)을 넘어간 첫 대규모 공격이자 핵보유국 간 벌어진 공방이었기에 유럽을 비롯한 주변국들이 크게 긴장하였다.

 EU의 모게리니 외교 대표가 내놓은 27일 자 성명은 하노이가 아닌 카슈미르에 대한 것이었다. “테러리즘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점을 파키스탄 총리에게 분명히 언급”하였다고 밝히면서, 또한 “이 지역의 긴장이 고조되지 않도록 양측이 신속한 정치적 대화를 할 것”을 촉구하였다.14) 사실 26-28일 사이, 유럽 언론의 외신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였던 것은 하노이 정상회담이 아니라 카슈미르 폭격이었다. 매년 수천 명의 파키스탄 난민이 유럽으로 넘어오는 상황에서 양국 간의 긴장은 유럽에게는 초미의 관심거리일 수밖에 없었다.

③ 역할 없는 곳에 존재도 없다: 한반도 주변 4강과의 차이

애초부터 하노이 정상회담은 1차 북미 정상회담만큼 관심을 끌지 못했다. 회담의 주된 의제로 예측되었던 비핵화 프로그램, 종전(終戰) 선언, 제재 완화(혹은 해제), 인권, 남북관계 개선 등은 국제사회를 지배하는 거버넌스에 별다른 새 이슈를 창출하지 못한 것이다. 오히려 피로감이 컸다. 유럽의 어느 언론도 어떤 의제가 토론될지, 무슨 시나리오가 펼쳐질지를 싱가포르 정상회담만큼 활기차게 보도하지 않았다. 이는 정보 부족뿐 아니라 양측으로부터 새로운 전략이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EU 입장에서는 어떤 새로운 논점도 발견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논점이 없으면 실천이 없고 실천이 없으면 역할도 없다.

EU는 한반도 주변 4강과 다른 맥락에 있다. 일본, 중국, 러시아는 한반도 문제에서 차지하고 있던 기존의 역할에 어떤 변화가 필요 없다. 주변 4대 강국으로서의 존재의 유지는 사태의 지속 혹은 변화와 관계없는 지정학적 상수다. 이들은 회담의 성과에 관계없이 입장이 유지 된다. 간여자(干與者)의 지위가 늘 확보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EU는 그렇지 않다. 유럽은 한반도 문제에 부여된 존재감이 매우 약하다. 오로지 실천과 역할을 통해서 한반도 문제에 간여하고자 한다. 그런 의지는 이미 지난 6월 1차 정상회담 이후 드러낸 바 있다. 그들이 가진 한반도 안보의 궁극적 목표는 북한의 CVID이고, IAEA와 CTBT 등의 비확산 레짐을 통해 간여할 것이며, 핵무기 없는 한반도를 위한 후속 협상 및 조치를 지원할 준비가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인권도 주요 의제로 본다. 이는 유럽이 존재에 따른 상수가 아니라 역할에 따른 변수임을 의미한다. 유럽의 이 같은 인식은 문재인 대통령이 작년에 유럽을 순방했을 때도 변함없이 유지되었다. 따라서 하노이 회담에서 실천과 활동이 제시되지 않은 이상, 유럽의 판단은 기존 입장의 고수였고 발현 형태는 침묵일 수밖에 없었다. 제재 완화든 비핵화 조치든 아무런 행위가 전제되지 않으면 새로운 역할 부여의 공간이 없다. 더 나아가 유럽은 하노이 정상회담이 한 것도 안 한 것도 아니라는 그들의 평가를 침묵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때때로 침묵은 전략이 되기도 한다. 18세기 유럽의 논객 디누아르(Dinouart)는 “정치적 침묵은, 스스로를 절제하며 좀처럼 속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라고 하였다. 한반도 주변 4강의 논평은 그들의 입장을 대변하였다. 지정학적 존재의 입장을 담다 보니 경직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침묵은 포괄성을 의미한다. 빈 공간이므로 향후 한반도 비핵화 과정에서 어떤 역할도 부여받을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이다. EU는 이번 하노이 정상회담이 가져온 허무한 반전 속에서 아무런 역할도 맡을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들의 침묵은 이번 회담에 대한 EU의 평가이자 향후 기회를 포착하기 위한 자리를 비워둔 것이기도 하다.

4. 마무리: 침묵이 만든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한 노력 
 하노이 회담이 열리기 두 주일 전 모게리니 EU 외교 대표는 ‘뮌헨 안보 회담’에서 주된 안보이슈로, ‘대량살상무기, 신 군비경쟁, 테리리스트, 기후변화, AI’ 등을, 관심지역으로는 ‘리비아, 동 우크라이나, 시리아, 예멘’ 등을 거론하였다. 그리고 의미 있는 발언을 하였다. 안보역량을 구축하기 위해 유럽적인 방법(European way)을 추진하겠다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동반자국가들에 대한 투자와 다자주의 노력에 매진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한반도 문제는, 이슈로는 대량살상무기 차원에서 방법으로는 다자주의가 유럽의 관심이 될 것이다.

 

   모게리니가 언급한 유럽의 안보 이슈는 그들만의 것이 아니라 세계적 차원에서 안보 거버넌스가 어느 방향으로 구축되어야 할지 방향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여전히 EU에 적절하고 타당한 역할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유럽이 특히 관심을 갖고 있는 UN등 다자적 기구를 통한 접근은 보이지 않는다. 양자관계로서 미국의 중요성을 유지하되, 지구적 차원의 안보의 방향을 읽을 필요가 있다. 하노이 정상회담은 결과적으로 유럽에게는 침묵을 가져왔다. 그들이 볼 때 무엇인가 세계적 흐름에 맞지 않았던 것이다. 유럽이 한반도 평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입을 열게 하는 것이 대한민국 외교의 또 하나 과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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