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대책 ‘원점 재검토’ 失機 말아야

전성훈 아산정책연구원 정책연구위원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국민을 불안케 하는 이상 징후가 곳곳에서 감지된다. 북한이 폐쇄키로 했던 동창리 미사일 발사 시설을 재건한 것은 물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호’를 생산하는 산음동 미사일 연구단지에서도 활발한 활동이 포착됐다. 하노이 회담 결렬로 크게 체면을 구긴 김정은의 대미 압박이자 신년사에서 밝힌 ‘새로운 길’을 갈 수 있다는 경고다. 평화적 목적의 위성 발사를 명분으로 장거리미사일을 시험하는 등 압박 수위를 높여갈 것으로 예상된다.

핵과 미사일 시험만 없으면 대화를 계속하겠다는 미국의 입장을 고려할 때, 동창리 미사일 시설 재건은 미·북 협상의 기본 전제를 허무는 것이다. 더욱이 남북이 합의한 평양 공동선언 위반이다. 이 선언의 제5조 1항에서 북한은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유관국 전문가들의 참관 하에 우선 영구적으로 폐기하기로’ 약속했다. 3·1운동 100주년을 남북 공동으로 기념하기로 한 제4조 3항에 이어 되풀이되는 명백한 선언 위반이다.

미사일 활동 재개에 대한 미국의 반응은 비판 일색이다. 대통령을 둘러싼 각종 잡음으로 대립하고 있는 민주·공화 양당이 철석같이 공조하는 대외정책이 북핵 문제다. 여야가 한목소리로 대북 제재를 더욱 강화할 것을 주문하고 있고, 불협화음을 보였던 행정부의 강온파 간에도 더 이상 이견이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핵 문제의 해결 필요성을 강조하며 기자들에게 “1년 안에 알려주겠다”고 한 것은 내년 재선에 앞서 북핵 문제를 일단락짓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하노이 회담 이후 요동치는 정세에 비춰볼 때, 문재인 정부의 대응은 안이함을 넘어 시대 흐름에 역주행하는 것 아니냐는 인상마저 준다. 문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 방안을 미국과 협의하겠다고 한 것은 미국에서 씨도 먹히지 않을 얘기다. 미·북 정상이 장시간 대화를 하고 신뢰를 높인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진전이라는 문 대통령의 평가도 현실과 맞지 않는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 한 신(新)한반도체제와 평화경제시대도 공허한 꿈일 뿐이다. 북한의 합의 위반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이 남북 협력만 외치는 정부의 태도에 많은 국민이 무척 의아해한다.

하노이 회담의 결렬은 문 정부가 대북정책을 재정비할 좋은 기회다. 판문점 선언과 평양 공동선언의 토대인 북한의 핵 포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3·1절 기념사와 후속 인사를 통해 문 정부는 기존 정책을 고수하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앞으로 국제사회의 반응은 더 차갑고 냉철할 것이며, 한·미 간의 균열과 마찰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우리 기업들이 섣불리 남북 경협에 뛰어들었다가 강력한 국제 제재를 받을 가능성이 우려된다.

지금까지 국민이 문 정부의 대북정책을 지지한 것은 노무현 정부와 달리 한·미 동맹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미 동맹보다 북한 지원을 더 중시하고, 미국과 대립하며 대북 퍼주기를 한다고 판단되는 순간 여론은 급변할 것이다. 같은 정상회담을 하고도 문 대통령은 김정은의 핵 포기를 단언한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핵 보유에 방점을 두는 정반대 평가가 나온 것은 심각한 문제다. 지금은 정부가 한·미 간의 인식 차이를 해소하고 대북정책을 근본적으로 정비해야 할 시점이다. 문 정부가 국민 안위 차원에서 북핵 문제에 대한 입장을 재정립하고 사태를 수습하는 데 실기(失機)하지 않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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