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회담에 대한 미국 내 반응:공통성과 다양성, 한미경제연구소(KEI)>

(김연호 한미경제연구소(KEI))

 

하노이 회담에 대한 미국 내 반응의 공통성
1. ‘흥행’에 실패한 2차 북미 정상회담 발표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은 처음부터 미국 내에서 ‘흥행’을 일으키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열린 역사적인 1차 정상회담만큼 세기의 관심을 끌 수 없었던 것은 2차 회담의 내재적 한계였다. 여기에 더해 미국 조야와 주류 언론은 연방정부 부분폐쇄의 정치적 후폭풍, 트럼프 대통령의 미-멕시코 장벽 건설을 위한 국가비상사태 선포,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의 대여 공세와 관련 청문회 등 숨돌릴 틈 없이 이어지는 국내 현안들 때문에 눈길을 돌릴 여유가 별로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올해 국정연설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의 날짜와 장소를 발표하는 이벤트를 준비했지만, 여당인 공화당 의원들조차 무덤덤한 반응을 보인 장면은 이런 분위기를 극적으로 보여줬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국정연설에서 초당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는 키워드를 골라내 대통령으로서 자신의 입지를 대내외에 과시하는 데 초점을 맞췄고, 초대손님으로 나온 오토 웜비어의 부모와 탈북자 지성호 씨는 이 같은 메시지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며 기립박수를 받았다. 반면 올해 국정연설에서 북한 문제는 트럼프 행정부의 ‘새롭고 과감한 외교’ 가운데 하나로 언급되는 데 그쳤다. 동맹의 중요성을 폄훼하고 독단적으로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결정하는 트럼프의 ‘새롭고 과감한 외교’는 공화당 내에서조차 비판을 받는 상황이었다.

하노이 회담 날짜가 다가올수록 미국 주류 언론과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담판에서 스몰딜의 대가로 무리한 양보를 내줄 것이라는 우려를 지속해서 제기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스탠퍼드대학 연설을 통해 협상 타결의 문턱을 상당히 낮추겠다는 신호를 확실히 보낸 만큼, 관심은 트럼프 대통령이 과연 무엇을 양보할 것인가에 모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에 대한 욕심을 숨기지 않았고, 자신의 개인 변호사였던 마이클 코언이 하원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폭탄 발언을 하는 상황에서 국내 여론의 관심을 돌릴 만한 이벤트에 집착하지 않겠냐는 지적이었다. 민주당은 하원 외교·군사·정보위원장의 공동명의로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공개서한에서 트럼프 행정부 대북정책의 투명성 결여를 지적하고 회담 직후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결과 보고를 요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통 큰 양보’에 대한 비판을 준비하고 있었다. 


2. 워싱턴의 컨센서스: “No Deal이 Bad Deal보다 낫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주류사회의 이 같은 우려와 기대(?)를 저버리고 ‘노딜’을 선택했다. 예측 불가능성을 무기로 ‘협상의 달인’을 자처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모두가 예상하던 스몰딜에 합의할 것이라는 전망은 처음부터 무리였는지 모른다. ‘김정은과의 햄버거 담판’에서 ‘코피 전략’을 오갈 만큼 정책 옵션의 진폭이 컸던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빅딜과 노딜 모두 카드에 들어 있었다. 오히려 스몰딜을 갖고 귀국할 경우 배드딜이라는 비판에 직면할 것임을 트럼프 대통령 본인이 잘 알고 있었고, 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이런 계산을 여과 없이 거듭 드러냈다.

미국 주류 언론은 협상 결렬·실패, 빈손 귀국, 협상 결렬 이유에 대한 북미 양측의 상반된 설명 등을 헤드라인으로 뽑으면서 2차 정상회담에 대해 냉정한 평가를 했다. 그러나 워싱턴의 컨센서스는 “배드딜보다는 노딜이 낫다”로 모이고 있다.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과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 역시 이 같은 평가에는 동의하고 있다. 미국의 국익을 손상할 수 있는 거래를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올바른 판단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이 하노이에서 보여준 카드는 미국 정치권에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의심케 하기에 충분했다. 북한은 하노이 담판에서 영변 핵시설을 검증할 수 있게 폐기하는 대가로 유엔의 핵심 경제제재 해제를 요구했다. 미국으로서는 대북 지렛대를 사실상 포기하라는 요구인 만큼 받아들일 수 없었다. 펠로시 하원의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 두 번이나 만난 만큼, 이제는 북한이 비핵화에 진정성이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화당의 대표적인 강경론자인 코리 가드너 상원 외교위원회 동아태 소위원장도 북한이 국제법상의 의무를 완전히 이행하기 전까지 제재의 고삐를 늦춰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반면 여당으로써 트럼프 대통령을 옹호해야 하는 미치 맥 코넬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의 경우 북한의 비핵화와 관련해 이번 회담에서 ‘충분한 진전’이 없는 만큼 협상 결렬은 잘된 일이라고 밝혔다. 케빈 매카시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도 김정은 위원장이 입장을 재고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거래를 성사시킬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공화당 지도부는 트럼프 대통령과 보조를 맞추며 북한과의 재협상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3. 간과할 수 없는 북한 인권
하노이 회담의 결과와 관련해 민주, 공화 양당이 초당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성토하는 이슈가 하나 있다. 북한에 억류됐다가 식물인간 상태로 풀려난 뒤 사망한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에 대한 기자회견 발언이 그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과 만나 웜비어 사망 사건에 대해 논의했냐는 질문에 대해, 김 위원장은 웜비어의 상태가 그렇게까지 된 줄 몰랐다고 해명했고 자신은 김 위원장의 말을 믿는다고 대답했다. 미국 정치권과 언론은 북한 독재자가 대미 협상 칩인 미국 시민의 상태를 몰랐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미 정보기관의 북한 핵 위협 평가는 무시하면서 독재자의 말을 믿는 트럼프 대통령을 강력히 비난했다. 웜비어 가족까지 트럼프 대통령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공화당 의원들조차 이에 가세하자 백악관이 해명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북한 인권 문제는 미국 정치권에서 초당적인 합의가 가능한 몇 안 되는 사안 가운데 하나인 데다, 웜비어 사망 사건을 계기로 미국 국내정치 문제가 돼 버렸다. 특히 웜비어의 고향인 오하이오주를 지역구로 둔 의원들은 여야를 불문하고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고 있다. 미국 내에서 북한 인권 문제는 대북제재와 압박에 강력한 명분을 제공하고 대북협상의 도덕성에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는 핵심 요소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향후 대처 방식에 놓고 다양한  시각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양측은 상대방의 협상 카드를 정확하게 확인했고, 협상 결렬 이후에도 외교적으로 상황을 관리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대북협상 회의론자들도 인정하고 있는 부분이다. 충분한 사전준비 없는 하향식의 정상회담 무용론도 공통으로 제기되고 있다. 미국은 국제법, 핵연료 주기, 미사일, 경제제재 등의 분야별 전문가들로 실무협상팀을 꾸려 하노이 현지에서 북한과 사전조율을 시도했다. 

그러나 북한은 영변 핵시설의 폐기 범위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다가, 협상이 결렬된 다음에야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영변 핵시설 ‘전체’를 폐기하겠다고 미국 측에 확인해 준 것으로 알려졌다. 정상회담 전날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과 만나 담판을 지으려던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노력도 허사였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타결 가능성이 없다는 참모들의 조언을 무시하고 북한의 대량살상무기까지 포함한 빅딜을 김 위원장에게 요구했다. 양측 정상들이 자신의 협상력만 믿고 상대방의 입장을 오판했으며, 처음부터 성공할 수 없는 협상 구조였다는 지적에는 이론이 없다.

그러나 향후 대처 방식에서는 시각이 현격히 갈리고 있다. 대북 관여와 단계적 해법을 지지하는 그룹은 하노이 회담을 계기로 북미 양측이 실질적인 협상에 들어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고 평가하고, 실무레벨에 권한을 대폭 이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통적인 대북협상 방식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견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란 핵 합의와 같이 검증 가능한 비핵화 조치와 상응 조치를 구체적으로 나열해 서로 가격표를 맞추고, 북한의 합의 위반에 대한 벌칙도 마련하는 기술적 협상이 먼저 타결돼야 하며, 그전까지 3차 북미 정상회담은 무리라는 지적이다. 또한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라는 궁극적 목표를 유지하되, 미국이 완전한 승리를 추구하기보다는 중간 단계의 현실적인 타협안을 목표로 설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그 동안 주류사회의 회의론에 밀려 있던 현실론자들은 지난 1월 말 비건 특별대표의 스탠퍼드대학 연설을 계기로 언론과 공개행사에서 자주 등장하면서 이런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들은 하노이 회담에서의 노딜이 오히려 현실적인 단계적 북핵 해법의 유용성을 입증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현실론자들은 상대적으로 구체적인 협상재개 방안을 논의하고 있지만, 회의론자들은 매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번 회담에서 북한은 상응 조치 가운데 제재 해제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있음을 드러냈고 이는 대북제재가 상당히 효과를 발휘하고 있음을 방증한다는 데는 미국 조야에서 이견이 없다. 현실론자들은 시간이 갈수록 북한의 선택지가 제한될 수밖에 없는 만큼 이를 활용해 협상을 추동해야 한다는 의견인 반면, 회의론자들은 경제제재가 미국의 강력한 대북 지렛대로 확인된 만큼 북한에 숨돌릴 틈을 주지 말고 제재의 고삐를 더 바짝 조여야 한다는 의견이다. 전통적인 단계적 대북협상으로 돌아갈 경우 또다시 북한의 협상 전술에 말려들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최근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복구 움직임은 이 같은 회의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북한이 하노이회담 직전부터 동창리 발사장 복구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지면서 대북협상 무용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풍계리 핵실험장의 관제센터와 부대시설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사실도 북한의 진정성을 의심케 하는 또 다른 증거로 지적되고 있다. 오히려 북한은 핵, 미사일 관련 시설의 새로운 움직임을 드러내면서 미국을 압박하는 전술로 돌아갈 것으로 회의론자들은 믿고 있다. 이와 관련된 정보기관들의 보고를 무시하고 북한의 실제 위협을 저평가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비난의 화살이 향하고 있다.

하노이 회담 이후 트럼프 행정부는 단계적 접근방식을 포기하고 포괄적 핵 합의 추구로 회귀하겠다는 의지를 공개적으로 천명하고 있다. 북한의 모든 대량살상무기를 대상으로 하는 빅딜이 이뤄지기 전까지 대북제재 해제도 없다는 강경론을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과 국무부 고위 당국자가 한목소리로 강조하고 나섰다. 비건 특별대표의 스탠퍼드대학 연설과는 전혀 다른 접근 방식이지만, 북한과의 협상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는 점에서는 회의론과 결이 다른 모습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북한의 호응을 기대하기 어려운 만큼 현실성이 별로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실론과 회의론 모두 향후 비핵화 협상에 별다른 진전 없이 동결 대 동결 (북한의 핵 및 미사일 시험 중단과 대규모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이 지속하는 현상 유지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이 경우 중국과 러시아의 비협조로 대북제재의 공동전선이 지속해서 약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이 비핵화에 진전이 없는 상태에서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 등 남북경협을 추진할 경우 한미관계에 마찰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한미 양국의 대북 군사 준비태세 약화 가능성에 대해서도 우려하는 분위기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민주당의 거센 정치적 공세와 2020년 대선을 앞두고 과연 북미 핵 협상에 지금과 같은 정도의 관심을 둘지도 핵심 변수로 꼽힌다.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만 태도를 바꾼다면 대선 전까지 빅딜을 타결해 비핵화를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이지만, 과연 협상 동력이 유지될지 의문이다. 러시아 게이트, 미-멕시코 국경장벽, 트럼프 대통령 본인과 가족의 세금과 회계 처리 문제 등 대선정국을 강타할 국내 현안들이 산적해 있기 때문에, 북핵 문제가 유권자들의 표심에 미칠 영향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국내 현안으로부터 여론의 관심을 돌리고 2차 북미 정상회담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계산도 희망에 그치고 말았던 게 사실이다. 3차 정상회담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외교적 치적을 쌓으려는 트럼프 대통령이 흡족할 만큼의 중대한 진전이 필요하다. 그러나 미국 대선정국까지는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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