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반도체제의 개념과 추진방향, 조한범 통일연구원 통일정책연구실 선임연구위원

1. 한반도 냉전질서의 기원

 샌프란시스코 체제 신한반도체제는 한반도와 동북아의 기존 질서를 대체하는 새로운 질서의 형성을 의미한다. 오늘날 역내 국제질서는 태평양전쟁의 전후처리를 위해 1951년 체결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San Francisco Peace Treaty)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 조약을 기반으로 형성된 동북아 국제질서가 샌프란시스코 체제이며, 한반도 안보질서는 이 체제에 근거하고 있다. 

태평양전쟁의 전후 처리 과정은 불완전했으며, 미국의 일본에 대한 정책도 일반적인 패전 처리와 달랐다. 그 핵심적인 이유는 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시작된 지구촌 차원의 냉전이었으며, 특히 중국의 공산화는 미국이 태평양전쟁종전과 일본의 패전 처리 정책을 바꾸게 된 결정적 계기였다. 중국의 견제를 위해 미국은 미일동맹체제를 형성해 패전국 일본을 동북아의 전략적 거점으로 전환시켰다. 샌프란시스코 체제 탄생의 배경이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체결 과정에 남북한과 중국의 참여가 배제되었고 일본의 식민 피해를 당한 아시아 각국의 입장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함으로써 오늘날 역내 외교안보적 분쟁의 소지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전쟁은 샌프란시스코 체제와 무관하지 않으며, 불완전한 정전체제로 귀결됨으로써 역내 안보적 긴장요인으로 작용해왔다. 냉전구도에 기반을 둔 샌프란시스코 체제는 아직도 관성을 유지하며, 한반도와 동북아 외교안보질서의 근간으로 작용하고 있다.

2. 유럽 신안보질서 형성의 시사점 

유럽의 탈냉전과 신안보질서 형성 과정은 한반도와 동북아 질서의 이해와 신한반도체제 형성에 일정한 시사점이 있다. 동북아와 달리 유럽의 2차 세계대전 전후 처리 과정은 비교적 원만하게 진행되었으며, 이는 1970년대 이후 본격화된 유럽의 신안보질서 형성의 배경이 되었다. 유럽의 냉전체제는 1970년대의 데탕트로부터 변화하기 시작했다. 데탕트는 동서독의 분단체제에도 변화를 초래했으며, 유럽 안보협력 확대의 배경이었다. 1975년 유럽 35개국은 헬싱키 유럽안보협력회의(CSCE)를 개최해 상호 간 국경존중, 무력사용 및 안보위협 중단, 평등과 자결권 보장 등을 포함하는 헬싱키 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유럽의 냉전은 완화되었다.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데탕트가 일시 중단되었으나, 1980년대 중반 소련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개혁·개방정책, 즉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을 본격화함으로써 신데탕트 국면이 조성되었다. 페레스트로이카는 동독 및 동구권 개혁의 촉진제가 되었다. 회의체 수준이었던 유럽안보협력회의(CSCE)는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로 발전했으며, 유럽은 재래식 무기 감축이라는 높은 수준의 안보협력을 통해 신안보질서를 형성할 수 있었다. 유럽의 신안보질서 형성이 가능했던 중요한 이유는 냉전의 한 축인 소련의 국력 약화와 사회주의 진영의 해체였다.

유럽은 2차 세계대전의 종전 처리를 기반으로 데탕트에서 시작해 안보대화와 군축을 통한 신안보질서 형성을 도모할 수 있었으나 동북아의 안보 협력은 유럽과 달리 낮은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반도 분단체제는 동북아 안보적 긴장의 가장 큰 원인이다. 한반도의 분단은 샌프란시스코의 기반 위에서 장기간 지속되어왔으며,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따른 군사적 긴장은 고조되었다. 이 과정에서 한·미·일 안보협력체제는 강화되었으 며, 이에 대응해 북·중·러 간의 암묵적 공조체제가 형성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중국 국력의 신장과 미중 패권경쟁의 심화는 동북아의 안보협력을 제약하는 또 다른 요인이다.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중국의 발전을 배경으로 아시아에서 유럽과 같은 도미노형 탈사회주의 체제 전환은 발생하지 않았다. 북한에게 중국은 여전히 잠재적 후원자이며, 중국도 북한을 전략적 자산으로서 인식하고 있다. 중국의 신형대국관계 전략과 미국의 인도· 태평양 전략이 충돌하고 있으며, 미중 무역전쟁은 가속화하고 있다.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의 영토분쟁은 역내 국가들의 군비경쟁을 촉발시키고 있으며, 중국의 공세적 군비 강화와 일본의 보통국가화 역시 가속화되고 있다. 유럽과 달리 동북아에서 냉전에 기반을 둔 샌프란시스코 체제가 관성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이다.

3. 신한반도체제의 도래 

분단체제와 북핵문제는 한반도와 동북아 안보의 핵심적 불안정 요인이라는 점에서 비핵· 평화체제의 진전은 역내 국제질서의 근본적 변화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이는 냉전체제에 기반을 둔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대체하는 신질서, 즉 신한반도체제의 형성을 의미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3.1절 기념사를 통해 평화협력공동체와 경제협력공동체를 두 축으로 하는 신한반도체제를 제안했다. 평화협력공동체는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을 의미 하며, 경제협력공동체는 평화경제 시대의 개막을 의미한다. 따라서 신한반도체제의 주요 영역은 한반도 비핵·평화체제를 포함하는 동북아 신안보질서, 새로운 남북관계, 그리고 평화경제라고 할 수 있다. 

신한반도체제의 형성에 있어서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은 핵심적 의미를 지닌 다. 북한 비핵화가 완료될 경우 한반도 평화협정의 체결이 필요하며, 남북한 간 관계 정상화를 위한 기본협정의 체결이 가능할 것이다. 이후의 과정은 국제적인 보장으로, 6자회담 참가국의 보장 또는 유엔안보리 또는 총회 결의 등이 그 방법이 될 수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은 남북, 북미 간 양자 방식과, 남·북·미·중 간 다자방식 두 차원에 가능할 것이다.

신한반도체제에서 남북은 공존·공영의 관계로 전환되며, 화해·협력 단계를 거쳐 남북연합을 지향할 수 있을 것이다. 남북연합은 사실상의 통일 상태로 궁극적인 정치통합 단계로 가는 잠정적 특수관계의 제도화에 해당한다. 신한반도체제에서 북한이 견지해온 대남 무력 통일관은 근거를 상실하게 될 것이며, 남북한 간 적대적 공존관계에 기생해 온 한국사회의 이념갈등과 남남갈등도 점진적으로 완화될 것이다. 남북한 사회에 고착된 냉전적 제도와 규범의 근본적 수정도 불가피하다. 

신한반도체제에서 한반도와 동북아 경제의 특징은 평화경제라고 할 수 있다. 평화경제의 핵심은 역내 경제협력의 저해요인인 한반도 분단체제가 해소된다는 점이며, 남북한과 유라시아 및 태평양 간의 경제적 교류를 단절시킨 장벽은 해소될 것이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태평양 해양권과 유라시아로 대륙권이 하나의 경제적 통로로 연결된다는 점이다. 한반도와 중국 동북 3성, 그리고 시베리아 극동을 연계하는 육상 교통· 물류체제가 마련됨으로써 한반도와 역내 경제통합이 가속화될 것이다.

4. 신한반도체제 형성을 위한 코리아 이니셔티브 

신한반도체제는 ‘수동적 냉전질서’에서 ‘능동적 평화질서’로의 전환이라는 점에 특징이 있다. 신한반도체제는 일제의 강점과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통해 강요된 지난 100년간의 한반도 질서에서 벗어나 우리가 주도하는 새로운 100년의 신질서 수립에 대한 비전과 약속이다. 신한반도체제에서 남북한과 동북아 각국은 평화와 경제의 협력공동체를 형성함으로써 분열과 갈등의 지난 100년과 질적으로 다른 공존·공영의 신동북아시대를 개막하게 될 것이다. 한국은 한반도의 비핵·평화체제 구축, 그리고 새로운 남북관계의 당사자로서 신한반도체제 형성을 위한 주체적 역할, 즉 코리아 이니셔티브를 구현해야 할 것이다. 

신한반도체제의 새로운 국가전략의 방향성을 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의 발전은 장기간 분단체제라는 구조적 제약 속에서 추구되었다는 점에서 신한반도체제에 부합하는 국가전략의 모색이 필요하다. 한국은 자주적인 기회를 상실하고 일제강점기 강요에 의해 기형적 근대화의 길을 걸었으며, 분단체제의 기형성 역시 한국 발전의 정상성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기반으로 남북 단일 생활 공동체를 형성하고 대륙과 해양을 연계하는 허브국가로서 위상을 정립하는 국가 발전전략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신한반도체제 형성의 출발점은 북핵위기의 근본적 해소와 평화체제 구축이다. 한반도의 비핵·평화체제 구축의 과정은 역내 평화협력을 위한 핵심적 과제라는 점에서 1970년대 유럽의 데탕트와 안보대화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 한국은 중재자가 아닌 당사자이며 한반도 문제 해결의 촉진자로서 핵문제 해결의 주도적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미국과 국제사회의 불신을 해소할 수 있는 북한의 실천적 비핵화 행동을 유도해내는 동시에 대북제재의 단계적 해제를 통해 북한을 견인해내는 행보를 본격화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의 동력이 약화되는 것을 방지하는 한국의 능동적 역할이다. 한반도 전역의 비핵·평화지대화를 동력으로 역내 다자안보협력의 확대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동북아 안보 협력은 아세안안보 포럼(ARF)과 같은 가칭 동북아지역안보포럼(North East Asia Regional Forum, NEARF) 에서부터 출발해 높은 수준의 안보협력을 지향할 수 있을 것이다.

분단체제는 한반도 냉전질서의 기반으로 동북아의 평화 협력을 저해하는 요인이라는 점에서 남북관계의 구조적 변화는 신한반도체제의 형성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남북 관계는 동북아 국제정치에서 우리가 적극적으로 주도할 수 있는 영역이다. 미중 패권경쟁 시대에 한반도의 전략적 중요성은 커지고 있다. 남북이 평화적 공존·공영 관계를 형성할 경우 한반도는 물론 역내 전반의 평화와 경제협력을 견인할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신한반도체제의 형성을 위해서는 화해·협력의 가속화와 아울러 남북연합 단계로 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남북기본협정의 체결을 통해 남북은 상호인정과 아울러 공존공영을 바탕으로 통일로 가는 잠정적 특수관계로 전환해야 하며, 자유로운 인적이동이 가능한 사회문화공동체와 경제공동체를 완성해야 할 것이다. 합의에 기반을 둔 통일국민협약의 체결을 통해 대내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신한반도체제의 신안보전략의 모색이 필요하다. 소모적인 군비경쟁을 지양하되 안보적 불확실성은 상존한다는 점에서 한국 국가이익을 관철할 수 있는 신안보전략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따른 군축과 국방선진화는 병행되어야 한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따라 한미동맹의 진화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감안하고, 장기적으로 전시작전권 환수를 계기로 자주국방체제로의 전환을 위한 중장기적 로드맵을 작성해야 할 것이다.

신한반도체제의 성장동력으로 평화경제를 본격화해야 할 것이다. 평화경제는 실현가능한 경제통일을 중심으로 통일프로세스와 발전 전략을 융합한 국가전략이며, 한반도와 동북아의 경제공동체 형성을 견인하게 될 것이다. 평화를 기반으로 남북경제공동체를 중심으로 신북방정책과 신남방정책을 연계하는 전략이 평화경제의 핵심이며, 신국가 발전전략이자 한국형 세계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평화경제는 한국경제의 획기적 도약을 약속하는 동력을 제공할 것이며, 북한의 경제위기를 해소하고 고속 성장을 가능케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평화경제를 통한 역내 경제협력의 확대는 안보협력을 촉진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신한반도체제에서 남북한과 동북아 각국은 평화와 경제의 협력공동체를 형성함으로써 분열과 갈등의 지난 100년과 질적으로 다른 공존·공영의 신동북아시대를 열어야 한다. 그 출발점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인 평화정착, 그리고 지속가능한 새로운 남북관계의 형성이다. 신한반도체제에서 남북한은 ‘평화의 완충지대’로서 평화와 번영의 신동북아시대를 견인해 나가야 한다. 신한반도체제 형성을 위한 코리아 이니셔티브를 적극 모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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