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적 무산인가? 의도된 결렬인가? - 제2차 북미정상회담의 결과를 보고 -

김영윤 (사)남북물류포럼 대표

대북정책의 대안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이럴 두고 하는 말인가. “실패한 정상회담은 없다”라는 이야기는 정상회담의 주도 면밀성을 의미한다. 북한 김혁철 대표와 미국의 비건대표는 양 정상이 도착하기 전 수차례의 실무협상을 통해 공동성명문안을 작성했다. 정상회담 이틀째인 2월 28일 아침만 하더라도 공동성명 서명식이 예고되어 있었다. 이 공동선언문을 양 정상이 보지 않았을 리 없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타결할 것이 남아 있다”는 메시지를 미국이 보내고, 난데없이 볼턴이 확대정상회담에 참가하면서 정상회담은 파국의 길로 치달았던 것 같다.

의도된 실패의 정황들이 보인다. 한 두 개가 아니다. 갑자기 나타나 인권문제를 이야기한 볼턴만 해도 그렇고, 그의 앞자리가 비어진 채 확대정상회담이 진행된 것만 해도 그렇다. 확대정상회담으로 들어가기 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던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우리가 충분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할 시간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1분이라도 귀중하니까..."라고 한 것은 “남아있는 그 최종적인 것을 타결해야 한다”는 김위원장의 급박한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때 트럼프 대통령은 확대정상회담이 어디로 갈 것인가를 벌써 예견하고 있었던 것 같다. ‘종전선언’에 대해 “오늘 최종적인 결론이 나오긴 힘들 것 같다”는 견해를 밝히면서 결렬을 무마하는 이야기를 했다. “어떤 일이 발생하더라도 우리는 김 위원장과 그의 나라에 좋은 합의를 할 것이다. 그게 우리가 향하는 곳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이를 하루, 한 번의 만남으로 할 순 없다”고 말했다. 서명을 앞둔 정상회담이 어찌 그런 모양새를 취할 수 있는가 말이다.

미국의 영변+@는 전혀 예비되지 않았던 사안이었다. 회담 결렬 후 기자들의 질문에 응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스스로 이야기한 내용에 그대로 담겨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에게 더 많은 (비핵화)조치를 요구하려했는데 김위원장은 그렇게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고 했다. 새로운 내용이 협상의제로 들이닥치게 한 것이다. 그러니 확대정상회담이 예정된 시간보다 1시간을 더 넘기지 않았던가.

북미정상회담의 무산 원인은 영변 핵시설의 영구 폐기와 제재완화를 맞바꾸는데 실패한 데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왜 사전에 이 문제를 조율하지 못했느냐는 점이다. 그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여기에는 미국의 국내문제 외는 달리 가져다 부칠 것이 없다.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 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이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는 정상회담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했다. 정상회담이 시작된 2월 27일 뉴미디어 언론사로 리버럴 성향의 Vox 뉴스가 다음과 같은 북미 정상회담 잠정 합의 내용을 단독 보도한 바 있다. ▲북·미간 종전선언 서명 ▲한국전 첨전 미전사자 유해 추가송환, ▲북미연락사무소 개소, ▲영변 핵무기용 물질생산 중단 ▲남북경협을 위한 유엔 대북 제재 일부 해제 등이 그것이다. 복스뉴스는 합의 내용을 두고 "김 위원장에게는 대단한 승리“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얻는 것보다 내주는 것이 많다는 것이 문제"라고까지 지적했다. 보수성향인 월스트리트 저널도 "트럼프의 평양중심 정책"이라는 사설을 실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비핵화 보단 전쟁 위험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추면서,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사실상 인정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적 선택이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의 결렬로 나타났다는 데 무게가 실린다. 여기에다 12년간 트럼프 대통령과 일하며'해결사'이자 '충복' 역할을 했던 코언의 상·하원 청문회(2.26~28)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불법행위 의혹을 증언했던 것도 국내여론을 의식하게 하는데 한 몫을 했다고 본다.

국내문제를 비핵화 협상에 이용한 트럼프 대통령. 미국의 주류세력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진정으로 원하고 있는가. 북한의 대북 제재 해제 요구가 전면적 해제를 요구하는 것이기에 받아들일 수 없었다면 왜 사전에 끝까지 절충안을 마련하지 못했던가 말이다. 전면적 대북제재 해제냐 부분적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민생과 인도적 사안과 직결된 문제라면 성실하게 조정안을 마련하는데 힘을 모아야 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북한의 경제발전을 원한다고 누누이 이야기하지 않았는가. 하기야 기획된, 결렬로 이끌어야 할 회담이었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트럼프 대통령과 작별하면서 백악관이 내보낸 김정은 위원장의 웃는 모습. 협상을 결렬시킨 미안함을 호도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정상회담의 결렬로 김정은 위원장은 북한 주민들에게 면목이 없어지게 되었다. 허탈한 심정으로 귀국길에 올랐을 것이다. 3,500킬로미터, 60시간을 달려온 간절함이 일거에 수포로 돌아갔다.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장도에 오르면서 김 위원장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회담을 성공시켜 인민들이 보다 더 잘 살 수 있게 만들고 싶은 마음을 부여잡을 것이다. 북한은 가장 중요한 체제안전을 위한 군사보장조치 요구는 미국을 생각해서 이번 회담에서는 요구하지 않았다고 했다. 핵과 미사일 포기각서를 써 줄 용의도 있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영변 핵시설의 영구 폐기만으로도 그들이 요구하는 대북 제재 완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충분한 가치를 가졌다고 믿었던 것 같다. 영변 핵시설 폐기를 너무 일찍 예고한 것이 협상의 약효를 떨어뜨린 것은 아니었을까? 제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영변 핵시설의 폐기를 이미 언급(919 평양공동선언 5조2항)한 적이 있다. 이것이 미국의 기대치를 한 단계 높여 놓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절망하기에는 이르다. 협상이 절단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는 충분히 확인되었다. 대북 제재 강화를 하겠느냐는 한국기자(채널 A)의 질문에 트럼프는 현 제재로도 충분하다고 했다. 북한 인민들도 살아야 한다고까지 했다. 이번에는 타결을 보지 못했지만 대북 경제제재 문제는 다음 회담의 필수 이슈가 될 것이다. 시간적으로 약간 늦어졌을 뿐이다. 의도된 실패였기에 희망은 살아있다. 그래서 우리의 역할이 더 커지고 중요해졌다. 금강산, 개성공단의 재개 요구에서 더 나아가 북한의 민생분야가 제재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여야 할 것이다. 그동안 쌓아온 신뢰를 바탕으로 남북이 빨리 대화해야 한다. 비핵화를 넘어 남북이 다정하게 사는 그 날을 위해 함께 가자는 희망을 전해야 할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우리에게 더 이상 물러서 곳이 없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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