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INF 조약 탈퇴 의도와 동아시아에 미치는 파장

이수형 국가안보전략연구원

2019년 2월 2일 미국은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성명을 통해 중거리핵전력(INF: Intermediate-Range Nuclear Forces, 이하 INF) 조약의 탈퇴를 공식화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성명에서 “관례적인 국제법에 따라 미국은 러시아의 중대한 위반에 대한 대응으로 오늘 INF 조약에 따른 의무를 중단했다. 미국은 오늘 러시아와 다른 조약 당사국들에 미국이 6개월 이내에 INF 조약에서 탈퇴할 것이라고 공식 통보했다”고 밝혔다. 

폼페이오 장관은 “러시아의 계속된 조약 불이행 문제가 미국의 최우선 이익을 위태롭게 했고, 러시아가 조약을 공공연히 위반하는 동안 미국도 더는 이 조약에 의해 제약받을 수는 없다고 결론 내렸다”면서 러시아에 책임을 돌렸다. 이에 앞서 푸틴 대통령은 “우리의 답은 대칭적으로 될 것이다. 미국 파트너들이 조약 참여를 중단한다고 밝혔고 이에 우리도 참여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향후 6개월 남은 기간 동안 INF 조약을 둘러싸고 미국과 러시아 간에 극적인 타결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2019년 하반기 국제정세는 새로운 군비경쟁과 군사적 긴장의 소용돌이로 빠져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INF 조약의 핵심 내용 

최근 미국과 러시아의 첨예한 대치국면을 야기한 주요 요인 중의 하나가 바로 INF 조약 문제이다. 이 조약은 지난 1987년 12월 8일 워싱턴에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이 맺은 중거리핵전력 철폐조약이다. 원래 중거리핵전력은 미국의 전략무기와 유럽에 배치되어 있는 전장무기 간의 연계를 강조하기 위해 미국의 관료들이 만들어낸 용어이다. 중거리핵전력의 원뜻은 장거리전장핵전력(LRTNF: Long-Range Theater Nuclear Forces)이다. 따라서 중거리핵전력은 단거리핵전력 (SNF: Short-Range Nuclear Forces, 500km 미만)과 장거리핵전력(LNF: Long-Range Nuclaer Forces, 5,500km 이상)사이에 있는 모든 미사일핵전력을 의미한다. 때때로 중거리핵전력은 유로전략(Euro-Strategic)미사일 또는 회색지대무기 라는 명칭으로도 사용된다.

냉전종식의 서막으로 상징될 정도로 역사적 평가를 받아 왔던 INF 조약은 미국과 소련의 지상발사시스템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의 생산ᆞ실험ᆞ배치를 전면 금지하고 있다. 다만, INF 조약에서는 지상발사 미사일만을 대상으로 삼고 있기에 공대지 미사일, 함대지 미사일, 그리고 잠수함발사 미사일은 철폐대상이 아니다. 또한 INF 조약 제2조에서는 중거리(intermediate-range)미사일의 사거리를 1,000km 초 과~5,500km 미만에 해당하는 탄도ᆞ순항미사일로, 그리고 보다 짧은 중거리미사일 (shorter-range)의 사거리는 500km 초과~1,000km미만에 해당하는 탄도ᆞ순항미사일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규정을 담고 있는 INF 조약에 따라 미국과 소련은 1991년 6월까지 지상발사 중거리 탄도ᆞ순항미사일 2,692기를 상호 검증 하에 폐기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미국의 INF 조약 탈퇴 배경과 명분 

21세기에 들어와 미국과 러시아는 냉전종식의 서막을 알렸던 INF 조약을 위태롭게 하는 일련의 작용ᆞ반작용의 안보정책을 추진해 왔다. 일례로, 2001년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1972년 소련과 체결한 탄도탄요격미사일(ABM) 조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자, 러시아는 이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INF 조약 파기를 언급한바 있다. INF 조약 준수 여부를 둘러싼 미국과 러시아 간의 논쟁은 미국의 미사일방어체제 구축과 맞물려 보다 본격화되는 양상을 보여 왔다. 핵무기 없는 자유로운 세상을 천명한 미국의 오바마 행 정부는 2009년 9월 중ᆞ단거리 미사일로부터 유럽을 보호하겠다는 ‘유럽에서의 단계별 적응적 접근방법(EPAA: European Phased Adaptive Approach)’이라는 미사일 방어체제를 공식화했다. 미국의 미사일방어체제 구상에 대해 러시아는 강하게 반발하면서 이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방안으로 이스칸데르(IsKander) 계열의 지상발사 미사일능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왔다. 창과 방패의 대결양상을 보여 왔던 미국과 러시아의 맞대응 양상은 결국 미국과 러시아 간 INF 조약 위반으로까지 비화되었다.

특히, 미국 우선주의와 힘을 통한 평화를 대외정책기조로 내세우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에 들어와 러시아가 INF 조약을 위반했다는 공세는 더욱 강해졌고, 그에 따라 미국의 INF 조약 탈퇴 가능성도 높아졌다. 급기야 2018년 10월 20일 트럼프 대통령은 11월 6일에 열릴 중간선거 지원유세를 위해 네바다 주 엘코를 방문한 자리에서 처음으로 INF 조약 파기를 언급했다. 이를 계기로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11월 북대서양이사 회(NAC) 회담 이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러시아가 INF 조약을 지속적으로 위반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미국의 INF 조약 탈퇴를 재차 강조하였다. 미국이 러시아의 INF 조약 위반의 사례로 지목한 미사일은 2017년 2월 러시아가 실전배치한 것으로 알려진 9M729 노바토르(Novator) 순항미사일(나토명 SSC-8)이다. 

이 미사일은 러시아의 ‘이스칸데르-M’ 시스템에 속하는 9M728 미사일의 개량형인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측은 이 미사일이 구형인 9M728에 비해 보다 강력한 탄두와 정교한 유도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나 추진체와 엔진, 연료탱크 등은 구형과 달라진 게 없으며, 사거리는 480km에 해당된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반해 미국 측은 신형 미사일이 구형보다 큰 연료탱크를 장착하고 있어 이 미사일의 사거리는 2,000~5,000km에 해당된다고 반박하면서 러시아가 INF 조약을 명백하게 위반했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였다.

미국의 INF 조약 탈퇴 의도

INF 조약 제15조에 따르면, 조약 당사국이 자신의 최고이익을 침해받지 않는 이상 이 조약의 유효기간은 무기한이다. 지상발사시스템에 국한된 중거리미사일 철폐라는 INF 조약 내용을 고려했을 경우, 미국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과연 러시아의 신형 미사일 실전배치가 미국이 INF 조약을 탈퇴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미국의 최고이익을 침해하였는가? 러시아가 INF 조약을 위반했기 때문에 미국은 INF 조약에서 탈퇴할 수밖에 없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공식적 명분의 이면에는 INF 조약 체결 당시와는 근본적으로 변화된 전략 환경에 대처하기 위한 미국의 전략적 의도가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INF 조약 탈퇴에 숨어있는 미국의 의도는 INF 조약을 바라보는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의 사고에 고스란히 담겨져있다. 이와 관련하여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은 미국기업연구소(AEI) 선임연구원이었던 시절인 2011년 8월 15일 월 스트리트저널(Wall Street Journal)에 기고한 칼럼에서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한 바 있다.

“INF 조약은 그 효용성을 다했다. 유일한 해법은 조약을 파기하거나 확대 개편하는 양자택일이다...이러한 이유로는 미국과 소련이 INF 조약체제에 속박되어 있는 가운데 미국에 대해서 새로운 전략적 위협국가로 부상한 중국, 이란, 그리고 북한은 INF 조약 의 규제 밖에서 자유롭게 중거리핵전력을 꾸준히 증강시켜왔기 때문이다... 중국은 순 항미사일과 탄도미사일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전력 향상을 이루고 있다. 특히,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패권 확대를 노리고 있는 시점에서 중국의 전력강화는 대만과 같은 미국의 동맹국뿐만 아니라 서태평양의 미군 주둔부대와 해상전력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북한과 이란을 포함하여 핵개발을 추진하는 불량국가들이 핵을 탑재한 탄도미사일발사 체 개발에도 속도를 올리고 있는 만큼 이런 국가들 역시 INF 조약의 잠재적 제재 대상 국이어야 한다... 미국은 중거리핵전력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서 INF 조약 가입국을 확대하여 모든 당사자들이 이 조약에 따르도록 만들든지, 아니면 조약 자체를 전면 파기하여 미국의 독자적인 억지력을 재구축해야 한다”

이러한 존 볼턴의 칼럼 내용을 고려했을 경우, 트럼프 행정부에 들어와 미국이 러시아의 위반 사례를 명분으로 INF 조약에서 탈퇴하고자 하는 전략적 의도는 다음과 같다. 무엇보다도 먼저, 존 볼턴의 지적처럼 변화된 전략 환경으로 INF 조약의 효용성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에 변화된 현실을 반영하여 주요 국가들을 새로운 가입국으로 추가 하는 INF 조약 가입국 확대를 도모하고자 하는 것이다. 

즉, 존 볼턴의 지적처럼 미국의 새로운 경쟁국으로 등장한 중국을 포함하여 미국 및 미국의 우방국이나 동맹국에 잠재적 위협이 될 수 있는 국가들을 새롭게 INF 조약 가입국으로 받아들여 새로운 환경에 부합하는 새로운 INF 조약을 체결코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이러한 의도가 현실화되기는 힘들 것이다. 군사력 증강을 꾸준하게 추진해 오고 있는 중국이 최근 괄목할만한 군사력 발전을 보이고 있는 부분이 바로 지상발사 중거리미사일 분야이기 때문에 미국이 새로운 INF 조약 참가국으로 지목하고 있는 중국이 INF 조약에 참가 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와 관련하여 2017년 4월 당시 미 태평양사령관이었던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 대사는 의회 증언에서 INF 비가입국들의 탄도ᆞ순항미사일에 대해 우려를 표하면서 “중국이 배치한 탄도ᆞ순항미사일의 95%가 INF 조약 가입국 위반 사안”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중국을 포함하는 새로운 INF 조약 체결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보다 가능성이 높은 미국의 INF 조약 탈퇴 의도는 무엇인가? 그것은 새로운 전략영역으로 부상한 인도ᆞ태평양 지역에 걸쳐 중국의 영향력 확장을 차단할 수 있는 미국의 독자적인 억지력을 구축ᆞ강화해 나가기 위한 책략으로 INF 조약 탈퇴를 활용코자 하는 것이다. 

2010년 이후 중국은 남중국해 주변 지역에서 미국의 군사적 접근을 차단하기 위해 반접근지역거부(A2AD) 전략의 일환으로 중거리미사일 능력을 강화해 왔다. 중국의 핵전력은 대륙간탄도미사일인 DF-31과 DF-41 등을 제외하면 DF-11(600km), DF-15(800km), DF-16(1,500km), DF-21(1,700km), DF-25(4,000km) 같은 탄도미사일과 CJ-10(2,500km) 같은 순항미사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지상발사미사 일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DF-21D는 2013년 중국이 미 해군 항공모함에 대응하기 위해 실전배치한 세계 최초의 대함탄도미사일이다. 

‘항공모함 킬러’라 부르는 이 미사일의 사거리는 1,800~3,000km에 이르고 요격이 매우 어렵기 때문에 미국에 가장 위협적인 무기이다. 그러나 미국은 이에 대처할 수 있는 중거리미사일이 부재한 상황이다. 따라서 이번 미국의 INF 조약 탈퇴는 새로운 INF 조약 체결 시 중국을 끌어들일 수 있는 전략적 압박카드가 될 수 있고, 보다 현실적으로 미국은 중국 주변의 동맹국가에 중국을 겨냥하는 중거리 탄도ᆞ순항 미사일을 배치하여 중국을 압박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자 하는 양수겸장인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새로운 유형의 군비경쟁

21세기에 들어와 전략적 영역으로 부상한 동아시아 지역에서 중국은 INF 조약에 구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중거리미사일 능력을 꾸준하게 증강해 왔다. 중국 동북 지역 퉁화(通化)에서부터 산둥 반도, 그리고 그 이남에 이르기까지 중국 동ᆞ남해안에 걸쳐 대거 배치되어 있는 중국의 중거리미사일 능력 신장은 남중국해 주변 지역뿐만 아니라 서태평양 일대의 미군 함정과 미군 기지에도 주요한 위협요인으로 작용해왔다. 

최근 중국 언론이 공개한 DF-26은 괌의 미군기지까지 사정거리에 두고 있어 ‘괌 킬러’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그러나 미국은 INF 조약 준수로 이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에 한계가 있고 중국의 위협을 억지하기 위해서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이나 B-52 폭격기와 같은 전략자산의 전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국이 INF 조약에서 탈퇴하고 결과적으로 조약 파기로 이어질 경우, 미국은 자신의 중거리핵미사일 능력 개발을 촉진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중거리미사일을 괌이나 주일 미군기지 등에 전진ᆞ배치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즉, 미국은 자신의 중거리핵전력 강화를 통해 인도양과 서태평양 일대에 걸쳐 자신의 전력을 강화시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의 INF 조약 탈퇴는 미중 간의 군비경쟁을 촉진시킬 수 있고 동(북)아시아 지역에 걸쳐 주요 국가들 간에 새로운 유형의 군비경쟁이라는 판도라 상자를 여는 최악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미국의 INF 조약 탈퇴는 중장기적으로 동(북)아시아에 새로운 유형의 군비경쟁을 초래함으로써 강대국정치뿐만 아니라 동맹정치의 게임양상을 변화시킬 파급력을 가지고 있다. 향후 전개될 동북아 강대국 정치나 동맹정치로부터 한반도 평화의 여정이 온전히 진행될 수 있는 우리의 중장기 전략적 방책을 강구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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