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초계기 갈등’의 배경과 시사점

김숙현 ·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원

한ᆞ일 초계기 갈등이 발생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상황은 가라앉기보다 계속 악화되는 추세이다. 사태해결을 위해 시도되었던 싱가포르에서의 한ᆞ일 실무회담은 아무런 성과 없이 결렬되었고, 일본 측은 한국과의 협의 중단을 선언하면서 당사국들끼리의 문제 해결은 사실상 불가능해진 듯 보인다. 더욱이 일본은 작년 12월 20일 초계기 갈등이 발생한 이후 계속해서 한국 군함에 대한 저공 위협 비행으로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

수십 년간 우방으로 지낸온 한ᆞ일관계가 이처럼 끝없는 감정싸움으로 번지며 나락으로 떨어지는 이유와 배경은 무엇일까? 그리고 우리는 작금의 사태로부터 어떠한 시사점을 도출할 수 있는 것인가?

한ᆞ일 초계기 갈등의 경과

초계기 갈등의 시작은 작년 12월 20일 15시경 독도 동북방 100마일(160Km) 한국 방공식별구역(KADIZ) 외곽에서 북한 표류어선에 대한 조난 작업을 펼치던 한국의 구축함 광개토대왕함과 일본 해상초계기 P-1의 만남으로 시작되었다. 일본 측은 해당 수 역이 자국의 배타적 경제수역으로 정상적인 정찰활동을 펼치던 것이었고 한국 구축함 을 향해 6차례나 무전을 통해 신분확인을 요구했으나 대답을 듣지 못했다고 했다. 더욱이 일본은 광개토대왕함이 자국의 초계기를 향하여 사격통제레이더(STIR-180)를 조사(照射)한 것은 명백한 적대행위라고 주장하면서 동영상을 제작하여 배포하는 등 사실관계와 입장을 둘러싸고 양국의 갈등은 악화일로를 걷게 되었다.

한국 국방부는 일본 측의 요구에 대해 외교 경로를 통해 사실관계와 입장을 전달하였다. 또한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합참의 검열단을 광개토대왕함에 파견하여 모든 상황을 면밀히 조사했으며, 해상에서 동일한 상황으로 시뮬레이션을 하기도 했다. 그 결과 한국 군함의 일본 초계기에 대한 사격통제레이더 조사는 없었다는 점이 재차 확인되었다. 한국 국방부는 오히려 일본 측이 한국 군함에 대해 근접 저공비행을 하는 것이야말로 우방국에 대한 적대적 행위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또한 일본의 동영상 배포에 대응하여 일본 측 주장을 반박하는 동영상을 제작ᆞ배포함으로써 동사안은 국제여론전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한ᆞ일 초계기 갈등의 확산이 양국관계에 결코 이롭지 못하 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일본은 12월 20일 최초의 초계기 갈등사건 이후 현재까지 3차 례에 걸쳐 추가로 한국 군함에 대한 근접 저공비행으로 ‘도발’을 계속하고 있다.


한ᆞ일 초계기 갈등의 배경

그 동안 한국과 일본은 역사문제와 교과서문제 등 다양한 사안을 두고서 때때로 대립과 마찰을 겪어 왔지만 상대방에 대한 군사적 위협행동이나 적대행동으로까지 악화된 적은 없었다.

그만큼 한ᆞ일 양국의 국방부문만큼은 상호협력의 전략적 필요성이 절 대적이었고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해 왔다는 점을 보여준다. 때문에 한국과 일본은 국민감정의 악화 속에서도 2016년 11월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체결할 수 있 었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군사교류와 협력은 지속되어 왔던 것이다. 그런데 최근 이처럼 양국의 군사안보분야마저 갈등과 대립의 늪에 빠져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일본 아베(安倍晋三)정부의 국내정치적 배경과 야심이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아베는 금년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으나 지지율이 계속 저하되는 상태였다. 아베로서는 한일 갈등을 고조시킴으로써 반한정서를 통해 보수우익 중심의 지지층을 결집하고자 한다. 작년 초부터 한반도 평화무드에 따른 북한 위협요인 약화와 러시아로부터의 쿠릴열도 반환 가능성이 급속히 저하되는 상황 속에서 아베는 한일갈등을 통해서 지지층을 재결집하고 정치적 지지율 확보의 새로운 수단으로 활용 하고자 의도한 것이다. 일본 국방부문의 의지와 별개로 아베의 직접 지시와 관여가 한 일 초계기 갈등에 투영되고 있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둘째, 한일관계에서 외교적 주도권을 회복하려는 아베 정부의 강한 의도가 작용한다고 보겠다. 문재인정부 등장이후 한일 간에는 위안부화해치유재단 해산, 제주해상 관함식에서의 일본 군함 욱일기 게양문제, 대법원의 강제징용자 배상판결 등 쉽사리 해결하기 어려운 갈등사안이 끊임없이 부각되어 왔다. 더욱이 올해는 한국의 독립선언과 3ᆞ1운동 100주년이자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아베 정부로서는 불리한 역사문제의 이슈에서 벗어나 군사적 이슈를쟁점화함으로써 국면을 전환하고 한일 관계에서의 외교적 주도권을 회복하려는 의도가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작년 가을 이후 중일관계 개선이라는 동북아 국제정치의 요소가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과 일본의 관계가 ‘갈등국면’일 때에는 어떻게든 한국을 끌어들 여 우군화(友軍化) 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중일관계가 ‘우호국면’에 접어든 이 상황에서 일본에 대한 한국의 전략적 가치는 그만큼 왜소해진 것이다. 나아가 일본은 對중국 정책에 있어서 갈수록 전략적 이해가 엇갈리는 한국을 보면서 전통적 한미일 3각 안보협 력체제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드는 상황이다. 때문에 아베 정부는 초계기 갈등 사건을 국제여론전으로 확대하고 미국을 끌어들여 한국을 안보협력의 ‘동반자’가 아닌 ‘부담자’로 인식시키려는 의도가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한일 초계기 갈등의 또 다른 국제정치적 배경에는 동북아에서 미국의 리더십 쇠퇴와 트럼프 행정부의 동맹관리의 미숙함이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간파해야 한다.

한ᆞ일 정치권과 고위급 외교라인이 나서야 할 때

문재인 정부가 발간한 『국가안보전략』에서 “일본은 지리적ᆞ문화적으로 우리의 가까운 이웃국가이자 세계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 함께 협력해 나가야 할 동반자이다” 라고 규정하고 있다. 한일관계가 발전되고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성숙하고 실질적인 협력을 추구해 나가야할 이유인 것이다. 또한 북한의 핵과 군사적 위협이 아직도 현존하 는 상황에서 한미일 3국의 안보협력은 우리의 국가안보에 필수적 자산이라는 전략적 인식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과 일본의 초계기 갈등은 갈수록 장기화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국 측은 2월에 예정인 해군 제1함대 사령관의 일본 방문을 보류하기로 했으며, 일본 측도 오는 4월 예정이던 해상자위대 호위함 이즈모의 한국 파견 취소를 검토 중이다. 미국은 한일 갈등이 심화되고 있음에도 언급을 자제하며 선을 긋는 모양새이다. 비핵화 협상 국면에서 북한과 중국은 연대가 강화되는 반면 한미일 3각 체제는 균열되 는 양상을 미국이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초계기 갈등은 국방부문의 사안으로 보이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이는 정치가 주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우리로 하여금 “문제는 정치야(It's the politics, stupid)”라는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따라서 한일 초계기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양국 최고지도자를 비롯한 정치권에서의 주도적 역할이 필요한 시점이다. 또한 한일 국방당국 간 대화나 합의가 어려워진 상황을 감안하면 최소한 양국의 고위급 외교라인들이 나서서 문제의 해결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다만 문제 해결 과 협상에 임하는 과정에서 갈등을 확대하고 이슈화하려는 일본의 의도에 말려들기보다는 침착하고 냉정한 대응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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