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재단 평화연구원, '외교안보의 컨트롤 타워기 보이지 않는다'
 
긴박하게 움직이는 주변국 정황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가시권에 들어오고 있다.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의 방미 이후 2월말을 목표로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실무협상이 진행 중이다. 김영철 부위원장의 방미를 전후해서 스웨덴 스톡홀름에서는 스티브 비건 미 국무부 대북 특별대표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 그리고 한국의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 평화교섭 본부장이 비공개 회담을 가졌다. 2월 초순에는 판문점에서 비건 특별대표와 김혁철 전 스페인 북한대사가 실무회담을 가질 예정이라고 한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에 연일 북·미회담 성사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다. 회담 개최지로 베트남의 다낭이 유력하다는 설도 흘러나온다. 
 
미 워싱턴 타임즈는 1월 28일자에서 미국 측이 에스크로(escrow) 계좌 개설을 통한 경제 보상 패키지를 북한 측에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북한이 미국의 제안을 수용할지가 관건이라는 단서가 붙었지만 보도 내용이 사실이라면 미국이 비핵화 협상을 단계별 접근방식으로 전환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북한도 1월 24일 조선중앙통신에서 김정은 위원장에게 김영철 부위원장이 방미 성과를 보고하는 장면을 내보내면서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공식화했다. 북한의 다른 매체들은 여전히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에 근거하여 제재 해제, 한미합동군사훈련의 영구 중단 등을 주장하고 있지만, 물밑에서는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 준비가 한창임은 분명해 보인다.
 
북한과 중국 관계도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연초 방중 이후 북한의 공훈예술단이 베이징에서 공연을 가졌다. 3년 전 베이징을 찾았다가 중국 측의 공연 내용 수정요구에 반발하여 철수한 이후 이번에 다시 찾은 것이다. 리수용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한 예술단은 1월 26일부터 28일까지 3차례 공연을 했다. 27일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부인 펑리위안 여사와 함께 관람하고, 이례적으로 리수용 단장과 면담도 했다. 시진핑 주석은 이 자리에서 북·중 수교 70주년의 의미와 양국 간의 우의 협력관계를 강조했다. 공연이 열리던 시기 베이징은 마치 주요국의 국가원수가 방문한 듯한 삼엄한 경호 분위기가 연출됐다. 공연 참관자들은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에서 직접 관리했으며, 공연 티켓도 엄청난 가격에 판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중국이 최선의 대우로 북한 예술 공연단을 맞이한 셈이다. 
 
일본의 아베 총리는 1월 28일 시정연설에서 북한과의 국교 정상화를 위한 북·일 정상회담 의지를 밝혔는가 하면, 방위력 증강 및 헌법 개정의지를 언급했다. 초계기 위협비행 논란으로 한일관계가 급랭한 상황에서 한국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는 반면, 북한과의 관계개선 의지를 밝힌 것이다. 일본은 또한 러시아와는 남쿠릴열도 문제를 다루는 양국 간 평화협정 논의를 구체화하는 한편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도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북·미관계가 정상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북·일관계 정상화는 요원한 일이며, 남쿠릴열도 2개 섬 반환에 대한 러시아 내 반발이 거세고, 중국의 세력 확장을 억제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의 추진으로 중·일 관계 정상화도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일본의 발 빠른 움직임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동북아 질서의 지작변동에 대비한 한국의 국가전략
 
미·중 무역전쟁과 북·미 정상회담 등으로 동아시아 기존질서의 지각변동을 예고하면서 지역의 각국은 저마다 자국의 이해타산에 맞춰 바쁘게 전략과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한국 역시 신 북방정책, 신 남방정책, 한반도 신 경제구상 등의 전략을 내놓으며 분주히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은 아직 성사되지 않았지만, 남북관계는 꾸준히 진전되고 있다. 남북 간 군사합의서에 기초해서 유해발굴 작업과 GP 철거 작업 등이 진행됐다. 북한지역의 철도 및 도로 현황 파악을 위한 현장조사를 실시하고 북한 도로현황에 대한 자료도 북한 측으로부터 넘겨받았다. 스톡홀름에서 개최된 비공개 북·미 실무협상에 이도훈 평화교섭본부장을 참석하게 해서 북·미관계 진전을 위한 중간역할도 원활하게 수행하는 듯이 보인다. 
 
신 북방정책에서는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남북한의 동해선을 연결하는 문제와 함께, 러시아 연해주 및 시베리아 개발, 북극 항로 개발 등 다양한 현안들이 검토되고 있다. 신 남방정책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이점을 극대화하기 위해 아세안(ASEAN)과 인도 등 남방국가들과의 협력을 강화한다는 전략을 담고 있다. 한국 정부는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의 평화를 기반으로 유라시아 대륙의 북방과 남방을 연결하는 거대 전략을 그려 놓고 있다. 한반도를 기점으로 삼아 육상으로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고, 해상으로는 해상교통로를 통한 남방의 거점을 연결하는 거대 타원을 구상한다. 
 
이러한 구상은 비단 번영의 공간을 넓히려는 것일 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분단을 극복하는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것이기도 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8.15 경축사에서 동북아 철도공동체와 에너지공동체 같은 전문 분야별 경제공동체를 추진하자고 제안했다. 이러한 분야별 공동체가 모이면 동북아의 안보공동체로 발전할 수 있다는 비전도 제시했다. 분단과 전쟁위협, 그리고 주변 강국들의 이합집산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국가 전략차원의 비전 제시였다.
 
좌충우돌하는 각론으로는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 
 
이렇듯 한국은 동아시아의 지각변동에 대응해서 큰 틀에서 장기 국가전략과 비전이 마련되어 있다. 그런데 총론은 있지만 각론이 잘 안 보인다. 청와대에서 발표한 문재인 정부의 국가안보전략을 보면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우리 주도의 방위역량을 강화한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한미동맹이 방위비 분담 문제로 삐걱거린다. 헤리스 주한 미대사는 한국의 안보당국에 방위비 분담 하한선을 강력하게 요구했다고 한다. 한국의 당국은 국민들의 정서를 고려할 때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북핵문제가 연계되어 주한미군 축소문제까지 거론되고 있다. 아직은 협상국면이기 때문에 확실한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한·미간 불협화음이 발생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미국의 정보기관과 연구기관들은 북한의 비핵화와 북미 정상회담의 성과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내놓고 있다. 이것은 북·미 비핵화 협상이 아직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한 데 따른 것으로, 오는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소기의 성과를 거둔다면 사그라들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엄청난 후폭풍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른다.
 
지금의 한·일관계는 역대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한·일 위안부 합의를 둘러싼 갈등으로 시작해서 강제징용 관련 대법원의 배상금 판결로 긴장이 더해지는 가운데 일본 초계기의 위협비행으로 양국 간 긴장 이 고조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시정연설에서 한국을 의도적으로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일본에 대한 한국 내 분위기는 더욱 냉담하다. 심지어 한·일 양국에서는 군사적 대응을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올 정도다. 급기야 미국은 한·일 양국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중재작업에 들어갔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일 양국 모두 관계를 푸는 출로를 찾기 위해 발 벗고 나서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치킨게임과 같이 충돌을 향해 돌진할 뿐이다.
 
북한은 남한에 대해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중국에 나와 있는 북한기관 사람들은 북·미관계가 개선되기 전에는 남북 간 협력은 불가능하니까 차라리 중국과의 관계를 확대하겠다고 한다. 북한 근로자들의 중국 체류도 점차 느는 추세다. 중국의 인건비 상승으로 북한 인력을 채용하려는 중국 기업들이 많아지고 있다. 비록 제재로 인해 공개적으로 채용할 수는 없지만, 비공식적 방식으로 북한 인력의 활용은 증가하고 있다. 북한을 찾는 중국 기업인들도 다시 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연초 중국 방문을 계기로 양국관계의 변화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으며, 이것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한·중관계도 과거 사드 배치 이후 악화된 관계가 개선되고 있다고 하지만, 시진핑 중국주석의 서울 답방 약속도 받아내지 못하는 등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북·중 정상회담 시 시진핑 주석이 “중국은 앞으로도 쌍방의 근본 이익을 수호하고 한반도의 정세 안정을 위해 적극적·건설적 역할을 발휘할 것”이라고 한 말의 의미도 되새김질할 필요가 있다.
 
야심차게 내놓은 신 남방정책은 전략적 관점을 놓친 채 경제협력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가운데 김현철 전 경제보좌관의 말실수로 인해 색이 바랬다. 신 북방정책 역시 북방경제협력위원장이 비상근 인사로 교체된 이후 표류하는 듯하다.
 
총론은 보이는데 각론에서 좌충우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외교안보의 컨트롤 타워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외 경제의존도는 90% 이상이고 안보는 한미동맹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안보와 경제는 동전의 앞뒤와 같이 연결되어 있다. 한·미동맹, 한·일관계, 한·중관계 등은 국방부와 외교부 등 안보부처의 문제로, 신 북방정책과 신 남방정책은 경제부처에서, 남북관계는 통일부에서 각자 알아서 하면 될 문제가 아니다. 안보와 경제문제가 하나의 전략적 관점 속에서 각각의 정책들이 연계되어 움직여야 한다. 
 
미국과의 방위비 분담 협상은 한·미동맹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방위비 분담을 다소 늘리더라도 남북 교류·협력에서 미국의 제재 면제 확대 등 양보를 얻어 더 큰 이득을 가져오는 것도 한 방법이다.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재구축하기 위해서도 한·일 민간차원의 협력을 강화하는 한편, 1.5트랙 대화부터 시작해 정부 간 대화를 통해 타협점을 모색해야 한다. 아울러 우리 정부가 먼저 일제의 피해를 받은 우리 국민들을 보듬는 일에 나서야 한다. 신 북방정책을 재가동하고 신 남방정책이 동력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인력을 재정비하고 구체적인 정책을 내놓고 국민들의  공감대를 얻도록 해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를 둘러싼 국제환경이 엄중하다. 동아시아 질서 재편이라는 큰 틀의 지각변동을 뚫고 나갈 국가 전략과 비전을 만들었다면, 이를 관철하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는 구체적인 정책과 치밀한 전술을 구사해야 하며, 이를 운영하는 컨트롤 타워를 제대로 구축해야 한다. 이제 문재인 정부는 출범 2주년을 앞두고 외교안보 컨트롤타워를 재정비하여 다시 신발끈을 질끈 동여매고 새 출발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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