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전쟁 ‘장기전’을 준비하는 중국, 이성현, 세종연구소)

[요약]

미중 무역전쟁이 ‘90일 휴전’에 들어갔지만, 중국이 내부적으로 장기전에 대비하고 있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물론 유비무환 차원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중국이 미국과의 관계를 심각하게 본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최근 몇 달간 중국 정부 관계자와 관방연구소 그리고 중국 언론인 단체들은 미국을 줄줄이 방문해 미국의 정치인들, 의회관계자, 싱크탱크, 언론인들을 면담했고,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인지했다.

중국은 차츰 미국의 중국에 대한 감정이 ‘불만’이기보다는 ‘분노’이고, 종합국력에서 중국에 바짝 추격당하고 있다는 ‘불안’에 가까우며, 심지어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 체제 사이의 이데올로기적 대립 양상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기 시작했다. 특히 시진핑 국가주석이 개헌을 통해 장기집권의 길을 마련하자 미국 일각에서 중국이 이제 ‘독재국가의 길’에 들어섰다고 관측하는 여론도 인지하게 되었다. 미국의 한 팟캐스트에서는 심지어 “이제 미국이 중국을 북한 보듯 한다‘는 농담도 나왔다.

중국은 초반부에는 미중 무역갈등을 양국이 지금까지 자주 겪어왔던 ‘늘 그렇듯한’ (usual) 사건으로 치부했었다. 즉 중국은 양국 간의 일시적인 무역분쟁을 미국 국내정치용이라고 생각했고, 트럼프가 중간선거에 이용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따라서 과거처럼 특사를 파견해 미국의 불편한 심기를 잠재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중국은 이러한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중국이 특사로 보내려던 시진핑 측근 류허(劉鶴) 중국 국무원 부총리의 워싱턴 방문이 며칠을 앞두고 전격 취소되는 에피소드도 발생했다. 그의 방문을 뻔히 알면서도 미국은 오히려 9월 24일 2000억 달러(약 223조원)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새로운 추가 관세를 매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날 관세 발효로 미국의 관세 부과 대상은 중국산 수입 규모 5055억 달러의 절반인 2500억 달러로 확대됐다.

전반적으로 볼 때 중국은 미국이 이렇게 강공으로 나오리라고 예상치 못한 듯하다12월 14일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 《환구시보》(環球時報, 환추스바오)는 중국이 야심 차게 추진하는 ‘중국제조 2025’를 예로 들며, 미국의 반응은 중국의 “예상을 벗어난 것”이라고 다분히 고백적인 사설을 실었다.

중국 내에서는 미중 갈등 장기화에 대비한 대책 마련 모임이 잦아졌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최근 실사단의 일원으로 직접 미국에 다녀온 중국 인사의 설명이다. 그에 의하면 현재 미국에는 중국을 바라보는 세 가지 시각이 존재한다.

첫째는 미국의 보수층과 군부를 중심으로 한 ‘강경파’다. 미국 방문을 통해 중국의 실사단은 미국 내 대중 강경파의 입장이 매우 완고하다는 것을 감지했다. 이들은 미국 다음의 ‘세계 2위’라는 이유만으로도 중국을 미국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한다. 따라서 중국은 미국 내부의 강경파에 대한 설득 혹은 회유의 여지를 발견하지 못 했으며, 이러한 노력이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만큼 미국의 중국에 대한 분노의 골이 깊은 것을 느낀 것이다. 그리고 중국은 이러한 ‘매파’들이 특히 트럼프 주위에 포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둘째는 민주당의 전통적인 대 중국 정서를 대표하는 ‘자유파’다. 이름이 함축하고 있는 것처럼 이들이 가장 중시하는 것은 미국 민주당이 전통적으로 신봉했던 가치인 ‘민주’와 ‘인권’에 대한 중국의 태도이다. ‘자유파’는 중국이 경제적, 군사적으로 세계 2위로 올라선 것은 용인할 수 있다. 하지만 중국에 대해서 도저히 용서하지 못하는 것이 한가지가 있다. 그것은 중국이 경제성장을 동력으로 세계적으로 중요한 책임감을 부여 받은 국가로 부상했음에도, 여전히 민주국가가 아니라는 점이다. 특히 과거 민주당 집권 시절에 클린턴 행정부가 중국에게 무역 최혜국(MFN)대우를 적용해주고 나중에는 중국의 WTO 가입 등 중국의 경제 부상을 견인하는데 큰 기여를 했음에도 여전히 오늘날 중국이 민주주의 국가가 아닌 것은 그들 인내심의 한계를 자극하고 있다. 즉 ‘자유파’로 분류된 집단의 대 중국 정서는 실망과 분노로 대변될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는 월스트리트와 실리콘밸리로 대표되는 미국의 ‘자본파’다. 중국의 시각에서 자본파는 미국에서 가장 ‘실용적’인 집단으로 분류된다. 이들은 중국이 불공정한 무역 게임을 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럼에도 손익에 대한 냉정한 계산에 근거하여 전체적으로는 여전히 중국과 비즈니스를 하는 것이 (아예 안하는 것보다) 더 수지가 맞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렇기에 미국의 자본파는 중국과의 경제적 상호의존을 통해 이윤을 최대화하고자 한다. 이들은 향후 미중 관계가 더 악화되더라도, 중국을 포기하지 못할 것이라고 중국이 판단하는 그룹이기도 하다.

자본파의 대표적인 행보는 2018년 6월 미국 전기차 회사 테슬라가 연간 50만대 생산 능력을 갖춘 공장을 미국이 아닌 중국 상하이에 짓기로 한 발표이다. 테슬라의 이러한 행보는 트럼프가 촉발한 무역전쟁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즉 테슬라는 중국산 제품에 대한 미국의 고율 관세 부과 직후 중국이 미국산 자동차에 최고 40%의 보복관세를 매기기로 한 것에 주목하여 중국 시장 접근을 목적으로 상하이에 공장 건설을 결정한 것이다. 테슬라의 ‘비애국적’ 행위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흥미로웠다. 이날 뉴욕 증시에서 테슬라 주가는 장중에 2.9%나 상승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본래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함께 중국의 관세 등 시장진입 장벽을 비판했던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되는 조짐을 보이자 그는 입장을 180도 바꾸었다. 중국은 최근 3년 연속 세계 최대의 전기차 시장으로, 테슬라 전기차 전체 판매량의 15%(1만 7000대)를 차지했다. 테슬라로서는 미중 무역전쟁 때문에 중국 시장을 포기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구체적인 투자 액수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중국 언론에 의하면 상하이 제조업 분야 사상 최대 규모 외자 프로젝트가 될 것이라고 한다. 이것이 자본이다. 자본은 국경과 이데올로기를 초월해 이익을 쫓아 움직인다.

중국은 ‘실리콘밸리’도 중국 시장을 포기하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최근 중국의 대표적인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의 2인자인 멍완저우 부회장(CFO)이 대이란 제재 위반 혐의로 전격적으로 체포된 사건이 발생했다. 미국 정부가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혁명의 신경망'이라는 5G(5세대) 통신산업 경쟁에서 중국의 추격을 막으려고 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왔다. ‘4차 산업혁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가 ‘빅 데이터’인데 이는 결국 인구에 비례한다. 왜냐하면 인구가 많을수록 빅데이터를 많이 수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빅데이터를 가장 많이 보유한 국가가 중국이다. 또한 중국이 빅데이터 사용에 있어 미국처럼 사생활보호법이 엄격하지 않다는 점도 다국적 기업들에게 큰 매력으로 작용한다.

중국은 이 세 그룹 중에서 여전히 중국과 같이 일할 수 있는 그룹이 누구인지, 그리고 같이 일할 수 없는 그룹이 누구인지를 고민하고 있다. 다시 말해, 중국에 회유가 가능하거나 혹은 불가능한 그룹으로 이들을 분류한 것이다. 일단 첫째 그룹인 ‘매파’와 둘째 그룹인 ‘자유파’는 둘 다 ‘안티 중국’ (anti-China)계열로 분류되어 배제된다. 그러므로 중국은 가장 ‘친 중국’ 성향을 가진 세번째 그룹인 ‘자본파’와의 연계를 강화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중국은 구체적으로 미중 무역전쟁을 위시한 미중 갈등이 중장기화 될 것에 대비한 대응 방안을 브레인스토밍하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소위 미국을 제외한 글로벌화’ (非美全球化, globalization without America) 전략이다말 그대로 미국을 빼고 글로벌라이제이션을 계속 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중국의 고립주의 전략으로 잘못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환구시보는 2018년 12월14일 “무엇이 이익인가에 따라 중국의 산업정책이 추진되어야 한다”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중국의 글로벌라이제이션 산업정책은 계속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것이 중국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라는 논지다. “개혁개방은 중국의 유일한 길이다. 지난 40년간 우리는 끊임없이 성공을 거두었다...이후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改革開放是中國唯一的路,過去40年我們不斷獲得成功... 今後也會是一樣).

미국이 중국을 글로벌 산업 밸류 체인(GVC)에서 제외하려고 하자 중국의 반응은 “좋다. 그렇다면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와 비즈니스를 하겠다”고 나선 격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와의 네트워킹을 현재 보다 더욱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둘째, 이는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를 중국의 ‘아군’으로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중국은 나머지를 한중일 3국, 동남아지역, 그리고 유럽 지역으로 구획한다. 즉 중국은 이렇게 세계를 3개의 ‘전선’(戰線)으로 나누어 이 지역의 국가들과 협력을 강화하려 할 것이다.

실제로 2018년은 중국 외교에서 19차 당대회에서 제시된 ‘신형대국외교’ (新型國際外交)가 큰 성과를 거둔 한 해다. 미국만 빼고 말이다. 한중 관계는 ‘사드 파동’ 이후 회복의 노정에 있고, 오랜 앙숙이었던 일본과는 신조 아베 일본 총리가 베이징을 방문하여 시진핑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한중일 3국 차원에서는 2018년 5월 일본에서 한중일정상회의를 가졌다. 국경 분쟁을 빚었던 인도와도 4월 중국 우한에서 정상회담을 가졌고 인도 총리 모디는 다시 6월 칭다오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모임에 참석차 중국을 방문했다.

이러한 외교적 성과와 더불어 중국은 과거에 영토 분쟁을 빚었던 필리핀과는 남중국해 자원 공동개발에 합의했고, 러시아와는 9월 러·중 대규모 합동훈련을 통해 미국을 겨냥한 공조 자세를 취했으며, 인도네시아와는 33조원 규모 통화스와프 체결했다. 중국 내부에서는 미중 관계를 제외하고는 2018년의 중국 외교가 큰 성공을 노정한 한 해로 평가하고 있다.

결국 중국은 미국과 중장기적인 경쟁 구도에 진입함에 따라,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과의 연합전선으로 미국에 대응하겠다는 전략을 내비쳤다. 화웨이 창업자의 딸인 멍완저우(孟晩舟) 부회장이 미국 정부의 요구로 캐나다에서 전격 체포돼 큰 파문이 이어지는 가운데 시진핑은 12월 13일 공산당정치국회의를 소집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위기의식을 강화하고, 국가발전의 중요한 전략적 기회를 계속해서 잘 이용하고, 신심을 가지고, 주동적으로 흔들림 없이 할 일을 하고, 전략적 정력을 유지해야 한다". 시진핑의 발언은 미중 간 국제적 세력경쟁 차원에서 벌어지는 현 무역전쟁의 기간과 파장이 어느 정도 장기화 될 것이라는 함의를 지니고 있다. 과연 이 전략은 성공할 것인가?

이에 대한 중국의 입장은 조심스러운 낙관론으로 선회하고 있다. 우선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오랜 숙적인 일본과의 관계 개선 상황을 살펴보자. 2018년 11월 상하이에서 열린 중국 최초의 수입박람회에서 가장 큰 전시회 참가국은 바로 일본이었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미국의 기업들이 참가 하지 않자, 그 빈자리를 바로 일본기업들이 채운 것이다. 소니와 파나소닉 등 가전제품 왕국인 일본은 오랫동안 중국의 가전제품 시장에 눈독을 들여왔다. 일본 산 전기밥솥을 비롯해 심지어 변기 뚜껑까지, 일본 가전제품에 대한 중국인들의 선호는 양국 정치와 무관하게 일관적이다. 이에 따라, 미국과 무역전쟁이 심화되면 중국 정부가 일본 가전제품이 중국 시장에 들어올 수 있게 문을 열어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중국은 한국과 일본이 국가 정책의 설계와 실행에서 미국처럼 이데올로기의 영향력이 강한 국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를 바탕으로 중국은 경제 인센티브를 통해 한일 양국을 어는 정도 중국 쪽으로 견인할 수 있거나, 한국과 일본이 미국의 대 중국 봉쇄에 공조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다분히 중국적인 생각일 수도 있다).

중국의 ‘미국을 뺀 세계화’ 전략이 성공할 수 있을까? 중국은 단기적으로 난관이 존재할 것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이러한 전략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중국의 자신감은 ‘시간은 중국편이다’는 발상에 기인하고 있다. 약 5년 동안은 중국이 조금 힘들겠지만, 중국은 자국이 살아남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욱 강해질 수 있다고 본다. 오히려 중국은 세계1위 경제국가인 미국과 무역을 하지 않고도 ‘살아남았으니’ 앞으로 미국과 대등한 실력을 갖추는 것은 시간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즉 미국과의 경쟁을 회피하지 않고, 중국의 부상에 필요한 ‘성장의 고통’으로 삼겠다는 발상이다.

물론 중국에게도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 있다. 그것은 바로 미국에 비해 아직까지는 절대적으로 열세인 군사력이다. 그래서 중국은 미국과 전면적인 군사적 충돌은 피하고 싶어할 것이다. 미중 관계의 도화선인 센카쿠, 남중국해, 대만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과 군사적 긴장은 종종 조성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긴장 국면이 충돌 국면으로 번지는 것은 중국이 억지하려 할 것이다. 즉, 미중이 군사충돌로 가지 않는 한, 미중 관계의 새로운 균형점을 모색하는 과정은 단기적 과제가 아닐 것이다. 금방 끝날 사안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12월 18일 '개혁개방 40주는 기념식'에서 시진핑은 ‘상상하기도 힘든 위험‘(難以想象的驚濤駭浪)에 대응하여 '공산당 통치'과 '경제개혁'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즉 중국은 이데올로기적으로 공산당 집권을 강화하면서도 경제개방을 통해 '주변국'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이역시 중국이 미국과의 장기전을 대비한다는 취지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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