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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체제를 넘어 동북아 신질서 구축으로 가는 길: 한국의 전략과 역할, 전재성, 동아시아연구원
  • SPN 서울평양뉴스 편집팀
  • 승인 2018.10.21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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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체제를 넘어 동북아 신질서 구축으로 가는 길: 한국의 전략과 역할, 동아시아연구원 전재성>

[요약]

“한국, 북핵 넘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이후 전략적 환경까지 고려해야”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으로 한반도와 동북아 지역 정세가 크게 변화하고 있는 가운데, 연내 2차 북미정상회담 및 북중, 북러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까지 논의되고 있어 그 변화의 물살은 더욱 빨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EAI는 이러한 흐름을 독자들이 보다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기발행된 관련 보고서를 엮어 ‘북한 바로 읽기’ 시리즈로 제공하고자 합니다. 이번 논평은 이러한 맥락에서 발간되는 ‘북한 바로 읽기’ 시리즈의 열 번째 보고서로, 전재성 EAI 국제관계연구센터 소장(서울대 교수)이 집필하였습니다. 

저자는 본 논평에서 현재 진행 중인 북핵 협상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및 동북아 신질서 수립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견인하는 과정에서의 한국의 전략과 역할에 대해 논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인 북미 간의 불신을 불식시키고 상호이해를 증진시키는데 있어서 한국의 역할이 중요하다면서,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한국이 첫째 완전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원칙을 준수하고, 둘째 자국은 물론 주변국의 중장기 전략 이익을 고려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본문]

지난 10월 7일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4차 방북 이후 북핵 협상이 한 단계 진전되리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연내 2차 북미 정상회담, 북러, 북중 정상회담, 그리고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방문 등 일련의 정상회담이 예상되고 북일 정상회담도 논의되는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은 북핵 문제 해결을 넘어 동북아 신질서 수립에 대한 전망까지 표명한 바 있다. 북핵 문제 해결과정에서 강대국들로 이루어진 동북아의 안보구조가 조금이라도 변화될 수 있다면 이는 실로 의미 있는 변화이다.

북핵 협상의 현 단계를 둘러싼 북미 간의 의견차이가 좁혀질 것이라는 기대도 커져가고 있다. 하지만 북핵 협상이 진전되면서 애초에 예상하지 못했던 많은 난관과 과제들도 등장하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역시 북미 간의 근본적인 불신과 단계별 상호 조치의 등가성에 대한 논란, 북미 양측의 내부 정치적 요인 등이다.

미국의 회의론은 김정은 위원장이 북한의 비핵화에 대해 명시적으로 직접 언급한 바 없으며, 한반도 비핵화를 목표로 제시하고 의미 있는 비핵화 조치를 취하는데 미흡하다는 관측에서 비롯된다. 의심의 눈초리로 보면, 북한이 폐기한 풍계리 핵실험장과 동창리 미사일 엔진 시험장 및 발사대 등은 북한의 핵, 미사일 개발에 이미 효용이 다한 시설이며, 북한은 여전히 플루토늄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 시뮬레이션에 의한 핵 능력 고도화를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북한은 미국이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한미군사훈련 중단 이외에 북한의 선제 조치에 대해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고, 훈련 중단도 언제든 재개할 수 있는 가역적 조치라는 점에서 미국의 행동 역시 신뢰할 수 없다고 본다. 북한은 또한 상응조치로 소위 “정치적 선언에 불과한” 종전선언을 회피하는 미국을 비난하고, 불가역적 핵폐기 이전 경제제재를 유지하고자 하는 미국에 대해 섭섭함을 감추지 않고 있다.

현 단계에서 북미 양측은 영변 핵시설 폐기, 미국과 국제사회의 검증, 북한의 핵시설, 핵무기 리스트 제출, 대북 경제제재 완화 등을 둘러싸고 각축을 벌이고 있다. 북미 간의 갈등은 양측 조치의 등가성을 둘러싼 논란이며 배후에는 신뢰부족이 작동하고 있다. 미국이 당초에 주장한 북한의 일방적이고 단기간에 걸친 비핵화 조치 이후 보상한다는 방안이 사실상 폐기되고, 북한이 제시한 단계적, 동시적 방안이 적용되면서,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을 둘러싼 등가성, 양측이 취한 조치의 (불)가역성의 등가성이 논란의 핵심이 된 것이다.

상대방에게 손해를 보는 듯한 선(先) 행동이 가져올 내부 정치적 부담도 크게 작용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협상 전략은 북미 협상의 실패의 역사를 알고 있는 미국 내 주류 전략가 집단에게 비판의 표적이 된지 오래이다. 북한에 대해 준비 안 된, 비등가적 양보 논란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국내정치적 부담으로 작동한다. 북한 측을 보면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나서서 하고 있는 비핵화 협상이 북한 내부의 정치, 사회 지형에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협상이 북한의 이익과 성과로 귀결되어야 하는 상황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자신의 결정이 옳다고 여겨지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9월 방북한 한국 특사단에게 토로한 것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간에 돈독한 신뢰가 쌓여가고 있다고 해도, 양측 모두 각자 내부 정치적 공격을 감당해야 하는 양면의 게임이 전개되는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하는데 큰 역할을 해왔다. 운전자론 등 북미 협상에서 한국의 역할에 대한 수사들이 난무했지만, 북미 협력의 촉진자로서 한국의 역할은 결국 다음과 같은 것이다. 첫째, 북한과 미국 양측의 입장과 전략을 감정 이입적으로 해석하고 이해하여 북미 상대방에게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 둘째, 이를 바탕으로 양측이 동의할 수 있는 창조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것, 셋째, 협상의 각 단계에서 북미 양측의 선 행동, 혹은 양보로 인한 국내정치적 부담을 경감하기 위해 일정 부분의 부담을 한국이 나누어 지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1992년 초 김용순-캔터 회담을 시작으로 북한과 미국이 양자 고위급 회담을 시작한 지 25년이 넘었지만, 서로를 이해하기에는 여전히 태평양만큼 넓은 거리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은 단일 민족, 혈맹의 역사 속에서 북미 양측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해석의 지평을 가지고 있으며, 양측의 견해를 “번역”하여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이 향후 추구하고자 하는 전략과 희망, 미국이 당면한 패권국으로서의 역할과 부담을 서로에게 전달하여 이해의 지평을 넓히는 역할을 수행하는 입장이다. 한국 정부는 다양한 차원에서 협상이 진전되게 하는 대안을 제시해 왔다. 

행동이 나아가지 않으면 말로 협상의 진전을 꾀하고, 합의가 어려운 대안들이 충돌할 때에는 대안을 더 잘게 쪼개어 타협이 가능한 영역을 넓히기도 하며, 남북관계를 진전시켜 북미협상을 추동하도록 시도하기도 한다. 한국이 제시하는 많은 안(案)들이 북미 양측에 의해 거부되기도 하고, 한국 내에서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며, 정리되지 않은 많은 안들이 공개되어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다양한 안을 조정해 나가는 과정에서 일정한 정도의 실패와 시행착오는 피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내부 정치와 반대의견에 좀 더 유연하게 대처하도록 문재인 대통령은 제기 가능한 비판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도 한다. 북한의 대중들에게 비핵화된 북한의 미래를 간접적으로 설득하기도 하고, 미국의 전략가들을 상대로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이 실패할 경우에도 손해 볼 것 없는 가역적인 것이라고 논하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은 상당한 오해를 불러올 수도 있지만, 종국에는 북미 협상의 내부적 불만을 해소하여 협상이 진전되도록 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협력 촉진 및 중재의 역할은 매우 정교하고 전략적인 노력을 필요로 한다. 특히, 다음 두 가지 측면에서 실패한다면 그간의 노력은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첫째 북핵 문제 해결에 관한 원칙의 일관성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비핵화 이전 제재의 유지, 영구적 평화체제 수립, 북미 관계 정상화 등 북핵 문제 해결에서 반드시 이룩되어야 할 원칙들을 제시했고 이탈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10월 12일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비핵화가 “추가적인 핵실험과 핵미사일 실험을 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해서 핵 생산 시설과 미사일 시설을 폐기하는 것, 현존하는 핵무기와 핵 물질을 없앤다는 것 전부가 포함된 약속”이라고 확언하고 있다. 그리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경제 발전을 위해 핵을 포기하겠다고 했고, 제재라는 어려움을 겪어가며 핵을 갖고 있을 이유가 전혀 없다.”는 전언도 하고 있다.

문제는 중재 과정에서 북한과 미국이 원칙에서 이탈할 동기를 여전히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경제제재가 완화되어 생존과 발전의 길이 마련될 경우 최소 억지의 수단으로 핵무기를 보유할 동기를 포기하기 어렵다.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 강화를 통해 경제협력의 가능성을 최대화하고 미국의 소극적 태도를 공동 비판하는 과정에서 북한은 국제적 제재 전선이 와해되고 핵 보유의 가능성이 있다고 오판할 수 있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최대 압박을 통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검증을 받아내려 하겠지만 이후 북한과의 전략적 관계 수립에 미온적이고 소극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다. 비핵화된 북한이 미국에게 어떠한 전략적 이익이 있는지 구체적이고 장기적인 전략이 결여된 미국으로서 북핵 문제는 미국 본토 안보와 핵비확산의 문제에 그칠 수 있다. 한국은 완전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목표를 흔들림 없이 수립하고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

북한은 한국이 남북관계를 추진하면서 미국의 눈치를 보며 대북 경제제재에 얽매여 있다고 비판한다. 한국 내에서도 부분적 경제제재 완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논의, 국제사회의 제재를 위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대북 독자 제재를 해제해야 한다는 논의 등이 비등하고 있다. 남북 경제교류는 향후 북한의 생존과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정책이다. 하지만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의 전략에서 이탈할 동기를 강화하지 않는다는 면에서 원칙에 기반한 대북 경제제재를 유지해야 한다.

미국의 일각에서는 한국이 남북관계를 강화하면 한국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서 이탈하려 한다는 의심을 제기하며 한미 갈등을 강조한다. 그러나 대북 관여정책의 필요성의 측면에서 남북 교류의 구체적이고 포괄적인 계획을 수립하여 대북 관여의 진정성을 계속 보여주는 것과,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따라 실행에 옮기는 시기를 조정하는 노력이 함께 가고 있다는 점을 설득해야 한다.

둘째,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의 중장기 전략 이익을 고려하면서 북한의 비핵화 완성을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 한국의 중장기 전략 이익도 실현해야 한다. 북한의 비핵화 완성 시점을 둘러싸고 무수한 논의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핵심은 북한이 최소한의 억지력으로 이미 만들어 놓은 핵무기까지 온전히 폐기할 수 있을 것인가, 이를 가능하게 할 북미 간 신뢰구축과 평화체제가 마련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평화체제는 전쟁과 갈등을 막는 소극적 평화를 위한 협상이지만 동시에 북한의 미래 지위와 자구(self-help)의 전략을 통해 발전의 방향을 모색하는 적극적 평화의 과정이기도 하다. 비핵화가 완성된 이후에도 미래의 북한을 둘러싸고 다양한 경쟁이 벌어질 것이다. 북한은 체제 보존과 수령체제 유지를 지향하며 발전을 추구할 것이며, 한국에 의한 흡수통일의 가능성을 최대한 배제하면서 한국과 새로운 차원의 경쟁을 시작하고자 할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상호 협력 하에 지구적 차원과 동북아에서 미국 견제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특히 트럼프 정부의 대중 무역 공세가 고조되면서 중국은 장기적으로 미국의 공세에 대비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이미 북핵 문제로 한미동맹 강화의 부작용을 경험한 이후 중국은 평화체제 협상 과정에서 중국의 이익을 한반도에서 실현하고자 할 것이다. 비핵화 이후의 북한과 전략적 협력관계 강화를 예비하면서 중국은 최근 북중 혈맹 관계, 사회주의 연대 등의 수사를 부활하고 있다.

이에 비해 미국의 트럼프 정부는 대중 무역 공세 이외에 체계적인 동아시아 전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데, 과연 형성 중인 인도-태평양 전략 하에 미국과 북한 간의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기 위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다. 북핵 전략을 넘어 중장기 북한 전략이 없는 미국이 평화체제 협상에서 얼마나 적극적으로 북한과 신뢰구축을 추구할지도 불확실하다.

한국은 평화체제 수립 이후 북한의 외교 전략과 대남 전략을 예상하면서 북미 간의 전략적 관계 설정을 위해 협력을 촉진시키는 역할도 해나가야 한다. 이 방정식 속에는 미중 관계를 비롯한 동북아 강대국 관계의 재설정이라는 과제가 있다. 한반도가 미중 전략 경쟁의 터가 되지 않도록 하면서 한국이 주축이 되는 평화통일의 국제환경을 만들어가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추구하는 동북아 신질서 속에는 북핵 협상 과정을 넘어 평화체제 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 경쟁과 협력 구도에 대한 비전이 함께 확립되어야 한다.@

SPN 서울평양뉴스 편집팀  seopyong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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