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재집권 후 일본과 한반도 (2): 아베의 정체성 정치와 한일관계, 동아시아연구원>

(정재정, 동아시아연구원)

[요약]

아베 총리의 장기 집권 요인을 분석하고 향후 일본과 한반도의 미래를 전망해 보고자 EAI가 기획한 “아베 신조 재집권 후 일본과 한반도” 제하 특별 기획 시리즈의 두 번째 논평이 발간되었습니다. 

이번 논평은 정재정 서울시립대 명예교수가 집필하였으며, 아베의 정체성 정치와 한일관계에 대해 분석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연임에 성공한 아베 총리가 ‘패전국으로서의 국가 이미지 쇄신’과 ‘헌법 개정을 통한 국군 보유’라는 두 가지 목표를 향해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며, 이는 향후 한일관계에도 상당한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고 전망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목표가 수정주의적 역사관에 입각해 있는데다, 이것이 아베의 한국에 대한 폄하 인식과 일본 국민의 혐한 감정에 의해 더욱 힘을 얻을 수 있다는 데에 있습니다. 현재 한반도 정세가 유동적이고 일본과의 공존을 도모해야 하는 현실을 감안할 때, 한국 정부는 유연한 사고를 통해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과 같은 과거 모범 사례를 거울 삼아 공동 번영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저자는 제언합니다.

총리 연임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018년 9월 20일 자유민주당 총재선거에서 압도적인 지지로 3선에 성공했다. 아주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아베는 2021년까지 집권할 것이다. 이 경우,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와 대부분 중복되므로 한국의 대일정책은 곧 아베를 상대로 한 씨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베는 승리 선언에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강한 리더십을 발휘하겠다.’고 부르짖었다. 남북화해 무드에 젖어 있는 한국에 각성을 촉구한 일성이라고 할 수 있다.

아베는 자타가 공인하는 보수 정치가다. 전후 일본의 보수 정치가들은 크게 보아 두 가지 목표를 과제로 삼아왔다. 첫째는 역사 인식의 수정이고, 둘째는 안전보장의 자주다. 역사 인식의 수정은 침략 전쟁의 패자로 낙인 찍힌 데서 벗어나는 일이다. 안전보장의 자주는 미국의 입김이 서린 헌법을 개정하여 국군을 보유하는 일이다. 두 차례에 걸쳐 7년여 동안 정권을 잡은 아베는 역대 어느 총리보다도 훨씬 두드러지게 두 가지 목표를 실현하는데 앞장섰다. 아베는 이번 승리를 국민의 확고한 지지로 받아들여 역사 인식의 수정과 안전보장의 자주를 더욱 힘차게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그 향방에 따라 한일관계에도 험난한 파도가 몰아칠 것이다. 지극히 유동적인 한반도 정세를 감안하면 어느 때보다도 유연한 사고와 간교한 지혜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역사 수정

아베는 제1차 집권기인 2006년 교육기본법을 개정하여 애국심 함양, 영토주권 중시, 전통과 문화의 존중 등을 학교 교육의 주요 목표로 제시했다. 그리고 그 주지를 해당 교과의 학습지도요령에 반영시켰다. 이에 따라 해당 교과서에도 그런 내용이 많이 들어갔다. 이것은 아베가 자신의 저서에서 강조한 ‘보수의 정신’, 곧 ‘일본의 오랜 역사 속에서 길러지고 이어져온 전통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일본적 내셔널리즘을 지향하는 아베는 제2차 집권 내각에 국수주의적 견해를 피력하는 정치인을 여럿 임용하였다. 아베는 내각 발족 직후인 2013년 2월 7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제1차 아베 내각에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못한 것은 지극히 유감이다.’, 4월 23일 같은 회의에서, ‘침략의 정의는 학계에서도 국제적으로 도 정해져 있지 않다.’고 발언하였다. 그리고 연말인 12월 26일 야스쿠니 신사를 전격 참배했다. 역사 수정을 행동으로 실천한 것이다.

아베의 역사수정주의적 발언과 행동은 한국과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의 반발까지 초래하였다. 미국의 주요 신문은 사설에서 ‘일본의 쓸데없는 국가주의’, ‘역사를 직시하지 못하는 아베’라고 비판했다. 미국 의회조사국에서 발표한 보고서에는 ‘아베는 일본의 침략과 아시아의 희생을 부정하는 역사수정주의적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언급하였다. 특히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서 주일 미국 대사관은, ‘미국 정부는 일본이 인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행동을 취한 것에 실망한다.’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미국 주요 신문도 ‘일본의 위험한 내셔널리즘’, ‘리더는 평화주의와 결별을 선언하였다’, ‘수상의 전쟁기념비 방문은 도발행위’라는 사설을 게재하였다.

아베의 역사수정주의적 발언과 행동은 근린제국과 관계를 악화시키는데 그치지 않고 한미일의 안전보장체제와 미국의 아시아 회귀 정책까지 해친다는 우려를 불러 일으켰다. 실제로 중국은 군사력을 계속 증강시키고, 한국의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일본과 정면으로 맞서며 소원한 관계로 돌아섰다. 미국의 싱크탱크는 ‘일본은 과거를 수정하기보다 장래 정책을 우선해야 한다.’거나, ‘역효과가 나는 역사주정주의를 포기’하라고 제안하였다. 미국 정부도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중재에 나섰다. 미국의 압박에 밀려 일본도 마지못해 한국의 역사 인식을 조금이나마 배려하면서 상호 신뢰를 모색하는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전 세계를 상대로 전략 외교를 표방한 아베는 일본의 역사 인식에 대한 국제 사회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나섰다. 2015년 4월 29일 아베는 미국 상하 양원 합동연설에서, ‘전후(戰後) 일본은 앞의 대전(大戰)에 대한 통절한 반성을 가슴에 새기고 걸어왔다. 아시아 여러 국민에게 고통을 끼친 사실에서 눈을 돌려서는 안 된다. 이 점에 대한 생각은 역대 총리와 전혀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죄’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않았다. 아베는 같은 해 3월 17일 유엔대학 연설, 4월 22일 아시아·아프리카 회의 연설, 8월 14일 내각총리대신 담화(70년 담화)에서도 ‘반성’을 언급하면서 전후 일본의 자유·민주·인권·평화 여정을 자랑했지만, ‘사죄’, ‘침략’, ‘식민지 지배’는 언급하지 않았다. 무라야 총리 이래 역대 총리는 대체로 ‘반성’, ‘사죄’, ‘침략’, ‘식민지 지배’를 키워드로 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아베는 ‘반성’만을 언급하면서도, 역대 총리의 담화를 계승해 나가겠다고 변명했다. 한국과 중국은 이러한 아베의 역사 인식에 대해 못미더워하지만, 다른 나라는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아베가 국제 사회를 상대로 끊임없이 부드럽게 자신의 역사 인식을 발신하는 것은 안전보장의 자주를 먼저 실현하기 위해 역사 수정의 순서를 뒤로 미뤄놓은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상황이 변하면 두 정책의 우선 순위나 추진 강도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그 향방에 따라 한일관계도 큰 부침을 겪게 될 것이다.

마침 올해는 일본의 메이지유신 150주년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메이지유신을 기념하는 절목마다 일본의 총리는 아베의 고향이자 선구인 조슈 출신이었다. 1918년 50주년 때 데라우치 마사타케(초대 조선총독), 1968년 100주년 때 사토 에이사쿠(총리, 아베의 외작은할아버지, 아베의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 총리의 동생), 2018년 150주년 때 아베가 그들이다. 아베는 막부 말기와 지금의 국제 정세가 닮았다고 본다. 그리고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헌법을 개정하여 제2의 유신을 일으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역사 수정을 꾀하는 아베로서는 자신의 집권 연장과 메이지유신 150주년을 절호의 찬스로 이용하고 있다. 일본의 공영방송 NHK도 메이지유신의 원훈이자 ‘한국 정벌’을 주장한 사이고 다카모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대하 드라마를 한 해 동안 방영하고 있다.

한일 관계

한일관계는 지금 겉으로는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2018년 1월 9일 한국 정부가 박근혜 정부와 아베 정부가 이룩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합의’(2015.12.28.)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발표한 이후 한때 양측은 날카롭게 대립했으나,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무기 개발, 남북 수뇌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등 동북아의 안전보장과 국제질서를 뒤흔드는 긴급 이슈에 밀려 역사 문제는 소강 국면을 맞았다. 물론 그 와중에도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나 역사 교과서 기술 등을 둘러싸고 연례 행사와 같은 공방은 있었지만, 그것이 한일관계 전반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었다.

역사 문제를 둘러싸고 한국과 일본이 뜨뜻미지근한 상황을 맞은 데는 한국 정부가 고육지책으로 채택하고 있는 ‘투 트랙 대일외교’가 한몫을 하였다. 그 골자는 다음과 같다. 역사 문제는 원칙에 입각하여 따지되, 그 밖의 현안은 실질적이고 실무적인 차원에서 협력을 꾀한다. 셔틀 외교를 재개하여 정상 외교를 복원하고, 북한의 핵개발과 미사일 도발에 대해서는 미국 및 일본과 긴밀히 공조한다.

한국 정부의 ‘투 트랙 대일외교’는 마땅한 전략이지만, 이것이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일본 정부가 ‘투 트랙’에 올라서야 한다. 열차는 두 바퀴로 굴러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투 트랙’에 올라설 생각이 별로 없다는 뜻을 내비쳤다. 오히려 역사 문제와 기타 현안을 연계하려는 속셈을 드러냈다. 특히 아베는 한국 정부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합의’의 확고한 이행을 촉구하며, 통화스와프 협의 등에 부정적 자세를 취하고 있다.

아베는 기본적으로 한국을 신뢰하지 않는다. 아베는 한국을 이렇게 본다. 한국은 자유와 법의 지배 등 기본적 가치를 일본과 공유하지 않는다. 한국은 법적으로 끝난 보상 문제를 되풀이하여 제기한다. 한국은 목표를 바꿔가며 역사 문제 해결을 요구한다. 한국은 국가 사이의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다. 화해는 상대방의 협력이 있어야 가능한데, 한국의 자세는 너무 강경하다. 한국은 중국에 지나치게 고분고분하면서, 일본에는 너무나 뻣뻣하다. 일본은 북한 문제를 빼고는 한국을 중시할 필요가 없다.

아베가 한국을 이렇게 폄하 또는 무시하는 데는 일본 국민의 한국 혐오가 큰 버팀목이 되고 있다. 일본 국민은 한국을 이렇게 여긴다. 한국이 끈질기게 일본에 사죄와 반성을 요구하는 데 지쳤다.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 및 북한에 호의적이고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미국 및 일본에 적대적인 것을 보면, 한국은 일본과 다른 체제와 이념을 지향하는 것 같다. 한국은 북한과 중국의 위협이나 미국과 중국의 역할에 대해 일본과 아주 다르게 여기고, 한미일의 안보협력에 대해서도 일본보다 훨씬 소극적이다. 무조건 일본을 미워하는 한국은 믿을 수 없고, 가기도 싫다.

한국에 대한 아베의 폄하 의식과 일본 국민의 혐오 감정은 상호작용을 일으키며 확산되고 심화되었다. 한국으로서는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고 분노하며 되받아 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런 일본과 공존을 도모해야 하는 게 한국 정부가 직면한 엄연한 현실이다. 아베가 앞으로도 3년이나 더 집권하게 되었으니 문재인 정부는 끝날 때까지 이런 아베 정부를 상대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크게 폭발할 지뢰가 널려 있다. 한 예로 한국의 징용 피해자가 미쓰비시 중공업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목전에 두고 있다. 판결 여하에 따라서는 1965년에 체결된 한일기본조약의 존폐를 묻게 될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도 다시 타오를 것이다. 여기에 북한과 일본의 역사 문제가 끼어들면 한일관계는 극한으로 치닫고 파탄으로 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면 한국과 일본은 직면할지도 모르는 난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지피지기(知彼知己)와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지혜를 발휘하라고 권하고 싶다. 한국과 일본은 상대방이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고 응대하는지를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폄하 의식과 혐오 감정, 일본에 대한 한국의 피해 의식과 원한 감정 등이다. 서로 상대를 잘 알아야 응어리를 풀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나아가 한국과 일본은 지난 70년 동안 역사 문제를 어떻게 다루었고, 무엇을 이룩했으며, 어떤 과제를 남겼는가를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한국과 일본은 역사 문제에서 격렬히 대립하고 갈등했지만, 타협하고 협력하고 경쟁하며 꽤 많은 것을 이루었다. 그리하여 서로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인권·평등·평화를 구가하는 나라를 만들었다. 이런 내력을, ‘적폐’가 아니라 ‘성취’라는 시각에서 제대로 이해하면, 문제해결에 필요한 지혜를 많이 얻을 수 있다.

올해는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가 1998년 10월 8일에 발표한 ‘21세기 새로운 한일파트너십 공동선언’의 20주년이다. 한국과 일본은 역사 인식 특히 ‘식민지 지배’에 대한 이해와 평가가 사뭇 다름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은 주지의 ‘공동선언’을 함께 만들고 공표했다. “오부치 총리대신은 금세기 한일 양국관계를 돌이켜 보고, 일본이 과거 한때 식민지 지배로 인하여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이에 대하여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하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러한 오부치 총리대신의 역사인식 표명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평가하는 동시에, 양국이 과거의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화해와 선린우호협력에 입각한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하여 서로 노력하는 것이 시대적 요청이라는 뜻을 표명하였다.”

이 ‘공동선언’은 한국과 일본이 처음으로 역사 인식에 합의하고, 그것을 문서로 만들어 양국 국민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 천명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또 지나쳐서 안 될 것은, 이 ‘공동선언’의 역사 인식은 2002년 9월 17일, 고이즈미 총리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평양선언’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는 사실이다.

돌이켜보면 한국과 일본은 1965년 6월 22일 국교수립조약(‘한일협정’)을 맺으면서도 식민지 지배에 대한 이해와 평가에서 정면으로 부딪쳐, ‘사죄와 반성’은커녕 ‘식민지 지배’라는 단어조차 집어넣지 못했다. 그로부터 삼십 수년이 흘러 일본의 역사 인식이 ‘공동선언’처럼 개선되는 데는 일본의 경제성장과 민주발전, 의식향상 등이 작용했지만, 양국의 역사 연구와 역사 대화도 큰 몫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또 양국 정부가 이런 노력을 받아들여 끈질기게 교섭하고 신중하게 타협한 공로도 잊어서는 안 된다.

그 후 일본의 역사 인식은 한 단계 더 개선되어 2010년 8월 10일, 간 나오토 총리는 ‘한국병합 100년’을 맞아 다음과 같은 주지의 담화를 발표하였다. 길지만 중요하므로 인용하겠다. “금년은 한일관계에서 커다란 전환점이 되는 해입니다. 정확히 100년 전 한일병합조약이 체결되어 이후 36년에 걸친 식민지 지배가 시작되었습니다. 3·1독립운동 등의 격렬한 저항에서도 나타났듯이, 정치·군사적 배경 하에 당시 한국인들은 그 뜻에 반하여 이루어진 식민지 지배로 국가와 문화를 빼앗기고, 민족의 자긍심에 깊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저는 역사에 대해 성실하게 임하고자 생각합니다. 역사의 사실을 직시하는 용기와 이를 인정하는 겸허함을 갖고, 스스로의 과오를 되돌아보는 것에 솔직하게 임하고자 생각합니다. 또한 아픔을 준 쪽은 잊기 쉽고, 받은 쪽은 이를 쉽게 잊지 못하는 법입니다. 이러한 식민지 지배가 초래한 다대한 손해와 아픔에 대해, 여기에 재차 통절한 반성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죄의 심정을 표명합니다.”

‘간 담화’가 ‘공동선언’보다 진보한 것은 ‘식민지 지배가 정치·군사적 배경 아래 한국인의 뜻에 반하여 이루어졌다.’는 점을 인정했다는 점에서다. 일본 정부가 그때까지 줄기차게 주장해 온 논리, 곧 ‘식민지 지배가 병합조약에 의해 합법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인식에 변화가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간 담화’가 발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민주당 정부는 자민당 정부로 교체되었다. 그리하여 지금은 ‘간 담화’를 기억하는 사람조차 별로 없다. 오히려 아베의 역사수정주의가 대세로 자리를 잡아가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그렇지만 엄연히 각의 결정을 통해 발표한 총리 담화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아베 총리도, 흔쾌하지는 않더라도, 역대 정부의 역사 인식을 계승하겠다는 공언 중에 ‘간 담화’를 포함시키기 바란다.

한국과 일본이 지피지기와 역지사지의 지혜를 살린다면 역사 문제의 험난한 파도를 극복하고 공동 번영의 미래를 개척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양국 국민의 진정한 바람이자 세계사 전개의 소명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강한 리더십을 발휘하겠다는 아베 신조 총리나, 남북화해를 넘어 동북아의 평화시대를 열어가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이야말로 해낼 수 있는 위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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