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공동선언 군사분야 합의와 남북한 공동안보> 이수형 (국가안보전략연구원>

2018년 한반도에 지정학의 대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한반도를 핵무 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와 번영의 터전으로 만들겠다는 남북 정상과 8,000만 겨레의 굳은 약속이 그것이다.

4월 27일 판문점 선언이 한반 도에서 냉전의 잔재를 종식시키겠다는 첫 발을 내딛었다면, 이번 9월 평양공동선언은 한반도 평화번영을 향해 퇴로가 없는 담대한 여정을 실천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3가지 방안 남북이 평화롭게 공존ㆍ공영할 수 있는 한반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남북관계의 진전과 북미 비핵화프로세스라는 두 개의 관문을 반드시 통과해야만 한다. 두 개의 관문을 지나가는 방법은 크게 3가지가 있다.

하나는 남북관계와 비핵화프로세스가 선순환으로 작동하여 이를 동시 적으로 통과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남북관계의 획기적 진전을 통해 지 체되는 비핵화프로세스를 견인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비핵화프로세스에 남북관계의 진전 속도를 맞추는 것이다. 6.12 북미 공동성명에도 불구하고 비핵화 협상이 교착 국면에 처해 있는 현재의 상황을 고려했 을 경우,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남북관계와 북미 비핵화프로세스가 같이 갈 수 있는 해법을 찾는 것 이상으로 남북관계의 진전을 통해 교착 국 면에 처해있는 비핵화프로세스를 견인하는 것이다. 이번 9월 평양공동 선언의 내용이 담고 있는 메시지도 이러한 맥락에 있다. 9월 평양공동 선언의 내용을 실천할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이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9월 평양공동선언의 내용을 흔들림 없이 실천해 나가야 한다.

향후 북미 비핵화프로세스에서 불협화음이 있을지라도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잘 관리하면서 남북한의 평화프로세 스를 진척시켜 나갈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서독의 동방정책의 교훈 이 대목에서 역사적 사례와 교훈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냉전시대 독일은 우리의 입장과 처지가 비슷한 분단국가였다. 서독도 처음에는 동독을 국가로 인정하는 그 어떤 국가(소련은 제외)와도 외교관계를 맺지 않겠다는 할슈타인 독트린을 동독정책의 근간으로 삼았다.

그러나 할슈타인 독트린은 서독의 안전과 평화를 보장하기보다는 변화하는 시 대흐름에 서독을 뒤처지게 만들고 미국과 소련이 구축한 냉전구도의 희생물이 될 개연성만을 높여줄 뿐이었다. 이에 서독은 할슈타인 독트 린을 폐기하고 소련, 동독, 루마니아, 폴란드와의 새로운 관계개선을 위한 초당적인 동방정책을 수립하여 이를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갔다.

서독이 동방정책을 추진할 당시의 환경과 여건은 결코 서독에게 우호 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국내외적으로 많은 난관과 어려움이 곳곳에 도 사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독은 평화를 향해 과감하게 나아갔다. 서독의 동방정책은 냉전의 유럽을 화해협력의 유럽으로 진입시킨 헬싱 키 프로세스의 전주곡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향후 독일 통일의 튼튼한 발판이 되었다. 초당적인 대북정책을 위한 발상의 전환 필요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가 깃들기 위해서는 남북관계와 북미 비핵화프 로세스가 동시적으로 작동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상황이 연출되지 않더라도 평화를 향한 담 대한 여정은 지속되어야 한다. 우리는 과거 서독의 경우처럼 남북관계 의 진전을 통해 비핵화프로세스를 견인해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체제의 뿌리를 내려야 한다. 이것이 바로 9월 평양공동선언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인 것이다. 다만,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초당적 합의에 기 초한 한국판 동방정책을 만들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번 9월 평양공동 선언을 계기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위한 한국의 동방정책이 구축 되어야 한다.  

초당적인 한국의 동방정책 구축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안보에 대한 우리의 관념과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정부수립 이래 우리는 안보 문 제를 놓고 내부적 분열 양상을 지속적으로 보여 왔다. 소위 남남갈등의 근본적 원천은 한반도가 남과 북으로 갈라져 있다는 엄연한 현실과 그 에 따라 북한을 바라보는 우리 내부의 인식의 상이성과 한국전쟁에 따 른 북한의 군사적 위협과 이에 대한 우리의 대비책을 둘러싼 타협하기 힘든 ‘논쟁을 위한 논쟁’의 악순환에 따른 것이었다. 이제는 과거의 논 쟁을 뒤로하고 안보 문제의 서로 다른 생각을 수렴하여 초당적인 한국 의 동방정책을 구축할 시기가 다가왔다.

왜냐하면 이번 9월 평양공동 선언은 남북한 한반도가 되돌릴 수 없는 평화의 한반도로 진입했다는 명백한 신호를 강렬하게 내비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은 무엇 보다도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를 통해 명확히 감지 된다. 군사분야 합의와 남북한 공동안보 9월 평양공동선언문에서 가장 두드러진 대목이라 할 수 있는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는 6개조 22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난 4.27 판문점 선언이 모든 적대행위 중지와 평화체제 구축에 관한 기본 방향을 밝혔다면, 이번 9월 군사분야 합의서는 판문점 선언을 이 행하기 위한 구체적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지상ㆍ해상ㆍ공중에서의 적 대행위를 중지하는 방법, 공통의 작전수행절차 준수, 비무장지대에서의 감시초소(GP) 철수, 공동경비구역(JSA)의 비무장화, 공동 유해 발굴, 한강하구 공동 이용 등을 담고 있다. 남북이 이러한 군사분야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한반도에서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4.27 판문점선언의 대의명분을 이 행하기 위한 구체적 실천 방안에 따른 것이지만, 그 이면에는 한반도 안보에 대한 남북한의 발상의 전환이 녹아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이 제까지의 대결적 국가안보(national security)에서 함께하는 공동안보 (common security)로의 전환인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공동안보는 1980년대 초반 미국과 소련의 중거리핵무 기 대결양상과 군비증대로 전쟁 위협이 고조되는 분위기에서 이를 해 결하고 유럽의 평화를 증진시키기 위해 나온 새로운 안보 개념이다. 안 보의 상호의존성을 강조하는 공동안보의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 째, 모든 국가는 안보를 위한 정당한 권리를 갖는다.

둘째, 군사력은 국가 간의 분쟁 해결을 위한 정당한 도구가 아니다. 셋째, 국가 정책의 표현에는 제한이 필요하다.

넷째, 안보는 군사적 우위로 얻을 수 없다. 다섯째, 무기의 양적인 감축과 질적인 제한은 공동안보를 위해 필수적 이다.

마지막으로, 무기협정과 정치적 사안의 연계는 피해야 한다. 요 컨대, 공동안보는 자신만의 입장을 강조하면서 안보의 절대성을 내세우 는 국가안보를 지양하고 상대방의 입장도 고려하면서 안보의 상대성을 중시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인 것이다.  

남북이 합의한 군사분야의 다양한 항목들은 억지에 바탕을 둔 기존 의 국가안보 대신 안보의 상호의존과 협력의 정신을 강조하는 공동안 보의 사고가 녹아 있다. 또한 이번 군사분야의 합의내용은 전통적인 안 보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고 비군사적 차원의 안보 문제도 포함하고 있 다. 예를 들면, 서해 북방 한계선 일대 평화수역조성 및 안전한 어로활 동 보장, 한강하구 공동이용 수역 설정 등 비군사적 차원의 안보 문제 에도 주목하고 있다.

이 또한 공동안보가 지향하는 안보 쟁점의 다양성 을 인정하는 포괄적인 안보와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군사분야의 합의는 안보와 평화, 평화와 안보의 선순환구조를 통 해서만 새로운 한반도 평화와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이 가능하다는 사 고의 전환과 새로운 인식의 첫발을 내딛은 것이다.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남북한의 군사적 긴 장완화와 더 높은 차원의 군사분야 협력, 그리고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의미 있고 중요한 것은 한반도 안보를 바라보는 우 리의 사고와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안보가 평화를 보장하고 평화가 안보를 더욱 튼튼히 뒷받침할 수 있는 평화지향의 안 보체제를 만들어 갈 수 있다.

한반도 안보에 대한 우리의 사고와 인식 전환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남북한의 군사적 협력 진척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우리는 또다시 한반도 안보문제를 놓고 철지난 남 남갈등의 악순환에 매몰될 것이다.

항구적인 한반도 평화를 염원하는 8,000만 겨레의 절실한 소망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되풀이 되는 남 남갈등과 우리 사회의 분열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이제부터 우리는 초당적 합의를 이루기 위해 국민적 지혜를 모아가야 한다. 이것이 진정 으로 이번 군사분야 합의 정신이자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체제를 뿌리 내릴 수 있는 첩경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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