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현안진단> 정영철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

이번 평양에서 열린 세 번째 정상회담은 앞으로의 남북관계가 어떻게 발전해 갈 것인지를 보여주었다. 현재 한반도를 짓누르고 있는 ‘비핵화’의 문제로 인해 남북관계가 한 발자국도 전진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번의 ‘공동선언’은 비핵화 문제에 대한 돌파구를 열어젖히는 것은 물론, 남북이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협이 없는 평화를 건설하고 그 기반 위에서 화해와 협력을 만들어갈 것을 다짐하였다.

이번의 정상회담은 올해 들어서만 세 번째이다. 어느 덧 남북은 수시로, 필요할 때 언제든 정상이 만나 현안을 논의하고 해결의 길을 찾아가는 관계를 만들어내었다. 두 번의 판문점 회담을 지나 이번에는 평양에서, 그리고 다음에는 서울에서 정상들이 만나기로 함으로써 수시 정상회담의 시대를 열었다. 언제든 남북의 정상이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관계가 만들어진 것이다.

특히, 이번의 정상회담은 비핵화를 둘러싸고 북미간 교착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먼저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큰 돌파구를 열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현재의 남북관계는 북미관계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비핵화와 대북제재라는 커다란 암초를 만나 관계진전의 속도가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이번의 정상회담에서 가장 중요한 의제로 비핵화 문제에서의 돌파구를 마련하고, 북미 양국 사이에서 문제를 풀 수 있는 중재자, 운전자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하는데 주력했다. 그리고 그 결실이 알차게 맺었다. 이제 남은 문제는 남북이 합심하여 약속을 잘 지키는 것이다.

이번 합의의 1항부터 4항까지는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세부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지금까지 남북관계는 전쟁의 위협, 군사적 긴장이라는 적대적 구조의 장벽 앞에서 제대로 된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이번의 합의가 획기적인 이유의 하나는 바로 이러한 남북의 적대적 구조를 근원적으로 종식시키기로 한데 있다.

‘군사적 적대관계 종식을 한반도 전 지역에서의 실질적인 전쟁위험 제거와 근본적인 적대관계 해소로 이어나가기’로 한 제1항은 이런 점에서 남북관계의 발전을 위한 가장 기초적인 밑받침을 놓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어 2항에서 4항까지는 다양한 분야에서의 남북 협력을 제시하고 있다. 현재의 대북제재라는 조건을 고려하여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의 우선적인 재개를 열어놓았고, 나아가 서해와 동해에서의 남북협력의 큰 청사진을 그려놓았다.

현 정부가 제안하는 ‘한반도 신경제지도’를 실행하기 위한 밑그림을 그렸다고 볼 수 있다. 주목되는 것은 그 동안 이산가족 상봉의 한 단계 진전을 위해 요구했던 금강산 상설면회소를 빠른 시일 내에 개소하고,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협력을 강화하기로 한 것이다. 과거 참여정부 시절 합의했던 상설면회소와 영상편지, 화상상봉 등의 다양한 이산가족 만남의 공간이 다시금 재개될 수 있게 된 것이다.

제4항에서는 문화예술, 체육 분야에서의 협력 특히, 2032년 올림픽 공동개최를 유치하는데 협력하기로 한 것은 남북관계의 커다란 발전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지속적인 남북협력의 전망을 세운 것이라 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이번 회담의 합의는 평화에 기초한 번영의 청사진을 제시한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 지난 <판문점선언>이 평화와 번영의 큰 틀에서의 합의라면, 이번의 회담은 번영을 위한 ‘평화’에 방점을 찍었고, 나아가 비핵화 문제에 대해 북한이 요구하는 ‘종전선언’의 조건을 남북이 먼저 합의했다고 볼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합의 이후, ‘전쟁없는 한반도가 시작되었다’고 한 평가대로, 전쟁없는 한반도를 만들기 위한 남북의 첫 발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군사분야 합의서를 함께 채택하면서 육·해·공을 망라한 모든 공간에서의 적대행위 금지, 그간 무력충돌의 바다였던 서해에서의 공동어로구역 설정 및 완충지대 설치, 비무장지대의 비무장화와 MDL에서의 군사연습 중지, 비행금지구역 설정 등을 통해 실제로 무력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을 사전에 봉쇄하는 합의를 이루었다.

그간 정상들 간의 합의에서 큰 틀의 합의가 있었지만, 구체적인 문제에서 갈등을 반복하던 데에서 벗어나 정상회담의 부속합의서를 명문화함으로써 실천을 담보했다는 점에서 커다란 진전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하자면, 결국 이번의 합의는 한반도의 적대적 ‘구조’를 청산하기 위한 근원적 변화의 길을 열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곧 남북의 적대적 관계의 근원을 해결하는 과정으로 들어섰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비핵화의 문제와 더불어 이전 시기와 완전히 달라진 남북관계를 만들어내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남북관계의 발전은 다양한 분야에서의 화해와 협력을 기초로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와 같은 화해와 협력이 진전되기 위해서는 남북의 공고한 ‘신뢰’의 구축이 전제되어야 하며, 이러한 신뢰의 구축은 곧 적대적 구조를 근본적으로 허물어버리는 것에 있다.

이제 문제는 이러한 합의들이 얼마나 실천되느냐가 될 것이다. 그리고 실천의 문제는 현재 상황에서 북미간의 비핵화 문제가 얼마나 진전되느냐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비핵화와 관련하여 이번의 합의는 남북이 비핵화‘안’에 합의했다는 점에서도 획기적이다. 지난 <판문점선언>에서 ‘완전한 비핵화’를 합의했다면, 이번의 합의는 남북이 주도하여 구체적인 북한의 행동을 이끌어내었다는 점에서 비핵화 문제에 대해 우리 정부가 핵심적인 당사자임을 확인하였고, 또 북한과 미국을 다시금 잡아당길 수 있는 돌파구를 마련했다는 점에서도 커다란 진전을 만들어내었다.

또한, 김정은 위원장의 ‘가까운 시일 내로 서울을 방문’한다고 하여 결국 올해 안에 김정은 위원장이 서울을 답방하는 네 번째 정상회담에 합의했다. 그간 2000년, 2007년의 정상회담에서도 서울 답방을 합의했지만, 이루어지지 못했던 북의 최고지도자의 서울 답방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수시 정상회담의 시대가 열렸다는 점에서,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의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북미간 협상이 어느 정도 진전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의 문재인 대통령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이번의 합의를 통해 9월의 유엔 총회, 그리고 이어지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을 설득하고, 북미간 협상을 재개시킬 수 있는 든든한 실탄을 마련하게 되었다. 과연 미국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가 관건이지만, 적어도 이번의 합의는 북한으로서는 자신들이 충분한 양보안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으며, 우리로서도 남북의 합의를 통해 위기에 빠진 협상의 틀을 다시금 세울 수 있는 동력을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남북의 관계 진전이 북미를 돌려세울 수 있는 가능성과 그 힘을 보여주었다는 데에 있다. 공동선언의 서문에 명시된 대로 이번의 합의는 ‘중요한 역사적 전기’를 마련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평화’에 발 딛고 남북관계의 ‘새 시대’라는 역사적 전기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금의 남북관계는 정부가 주도하고 있고, 이로써 남북 정부간 신뢰와 의존의 관계가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합의된 내용이 즉, 위로부터 주어진 상호 의존관계가 아래로부터의 사회적, 군사적, 경제적 신뢰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사상누각이 되고 말 것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위로부터의 신뢰 구조를 아래에서의 신뢰 구조로 확대하고 강화시키는 것이라 할 것이다.

그런 점에 이제부터의 남북의 민간교류, 경제교류, 군사적 신뢰 구축 등이 중요해졌다고 할 수 있다. 남북관계의 발전은 정부와 민간, 그리고 경제계가 모두 합심해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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