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브리프18-39

2018 동방경제포럼 : 러·중·일 정상 회동과 국제정치적 함의

서동주 (대외전략연구실)

러시아 新 동방정책의 핵심체 – 동방경제포럼

우리는 다음주 18-20일간 평양에서 개최되는 남북 정상회담에 관심이 쏠려 있지만, 조금 위로 고개를 올려보면 러시아 극동의 항구 블라디보스토크에서 9월 11-13일간 동방경제포럼이 개최되고 있다.  

2015년부터 매년 치러지는 국제행사로 올해 4회째에 이른다. 이 자리에는 푸틴 대통령을 비롯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아베 일본 총리, 이낙연 총리, 바툴가 몽골 대통령 등 동북아 정상급 인사들이 대거 참석하고 있다. 러시아가 극동에서 벌이는 초가을 외교잔치 무대이기도 하다. 특히 금년의 경우 남·북 정상회담, 북·중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된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동시에 초청되어 남-북-러 3자 정상회담이 성사될 가능성이 거론되기도 하였다. 결국 이는 이뤄지지 않고 다음을 기약하게 되었지만, 변화무쌍하게 전개되고 있는 한반도 국제환경의 진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러시아는 국제적 관심을 끄는 국가적 행사를 매년 몇 차례 치른다. 러시아판 다보스 포럼으로 지칭되는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SPIEF)이 대표적이며, 예카테린부르크 이노프롬, 그리고 블라디보스토크 동방경제포럼(EEF)도 이에 해당된다. 매년 9월에 열리는 동방경제포럼은 러시아가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몇 안되는 국제포럼 중의 하나로, 동북아지역에서 러시아의 존재감을 과시하고 실질 적인 경제적 실익을 얻고자 하는 의도가 크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메르켈 독일 총리가 국제경제포럼에 주빈으로 참석하듯 동방경제포럼 에도 역내 각국 정상들이 참석함으로써 푸틴의 권위와 국제적 위상을 빛내 주기도 한다. 

2016년 2차 때는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참석하였으며, 3차 때는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참석하였다. 이번 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처음으로 참석해 빛을 더해주고 있다. 주변국 정상들은 푸틴의 자리를 빛내 주는 한편 당면 현안과 상호 관심을 나누고, 실익도 챙겨 나가려고 한다. 내면에는 각자 국익 극대화를 위한 전략 구사와 치열한 외교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실 동방경제포럼은 2014년 3월 크림반도 병합을 계기로 미국과 서방측의 대러 제재가 강화되면서 러시아로서는 새로운 활로를 찾고자 고심 끝에 동방으로의 진출을 도모하게 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서쪽의 관문 상트페테르부르크를 표트르 대제가 건설했듯이, 동쪽의 관문 블라 디보스토크를 21세기에 새롭게 건설해 푸틴이 동방의 표트르 대제가 되려한다는 명분을 담은 이야기도 회자되었다. 아무튼 중국 동북 3성 의 급속한 발전에 비추어 낙후된 극동시베리아 지역을 발전시키는 것 은 안보적 측면에서도 경제적 측면에서도 시급한 일이 되었기 때문이 다. 소위 신동방정책 추진의 핵심체로 동방경제포럼이 다뤄지게 된 것 이다.

핵심 주제 - ‘극동: 가능성의 범위 확대’

금년도 동방경제포럼에서 다뤄지는 핵심 주제는 ‘극동: 가능성의 범 위 확대’이다. 이것이 보다 세분화된 주제는 ‘투자자 지원 도구: 다음 단계’, ‘극동의 산업 우선순위’, ‘글로벌 극동: 국제협력 프로젝트’, ‘사람을 위한 생활환경 조성’ 등으로 되어 있다. 참고로 5월에 개최된 국 제경제포럼의 핵심 의제는 ‘신뢰의 경제구축’이었다. 현재 러시아가 경 제와 연관된 부문에 얼마나 신경을 쓰는지 잘 알 수 있다.

대회를 준비한 트루트네프 부총리 겸 극동관구 대통령 전권대표는 주요 과제로 다음의 세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국제 투자 커뮤니티, 러시아 사업계, 연방, 지역 및 시정부 기관들 간 교류 강화; 둘째, 러시아 극동 경제 잠재력의 전면적 전문가 평가 및 러시아 국내외적으로 극동 경쟁력과 투자 매력 강화; 셋째, 사업 투자 및 추진의 새로운 환경 발표: 선도개발구역, 블라디보스토크 자유항, 유망 투자프로젝트 국가지원 등이다.(https://forumvostok.ru) 러시아가 국제협력을 통한 극동시베리아 개발을 이루기 위해 나름대로의 주제를 발굴하고 해내야 할 과제까지도 잘 설정해 놓고 있다. 이제 놓여진 진짜 문제는 이의 실천에 있다.

금년도 동방경제포럼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돋보인다. 첫째는 논의 주제가 풍부하고 관련 지식과 경험의 축적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페이지가 46쪽에 이를 정도로 해를 거듭할수록 회의 내용이 풍부해지고, 깊이도 더 해가고 있다. 동방경제포럼의 주제 는 매년 바뀌어 왔다. 2017년에는 ‘극동, 새로운 현실을 창조하며’가 핵심 주제이었으며, 세부적으로 ‘극동 경제정책: 향후 방향,’ ‘극동에서 사업하는 법’, ‘우리는 이웃입니다; 협력을 통한 수익,’ ‘극동: 새로운 삶의 질과 도전에 대한 대응’을 다루었다. 주제 면에서 보다 현실적인 실천에 초점으로 두고 구체화되는 등 점차 진화해 나가는 모습을 띠고 있다. 프로그램에 적시된 제목만 보아도 전체적인 맥락과 문제점, 현재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둘째, 시진핑 국가주석, 아베 총리의 참가로 푸틴-시진핑-아베의 3자간 회동 구도가 이뤄졌다는 점이다. 동북아지역 국가로서 미국을 제 외한 3국 지도자들이 북핵문제를 비롯해 역내 현안들을 다루는 러·중, 러·일, 중·일 정상회담이 연이어 개최된다. 이는 현재 진행 중인 동북 아, 한반도 국제질서 재편과 연계되어 있으며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져 준다. 전략적 탐색과 물밑 합종연횡이 무성할 것이다. 이전에 비해 중요성과 무게감이 더해진 이유이다.

셋째, 푸틴 대통령은 5월 개각하면서 갈루슈카 극동개발부 장관을 경질하고 극동 아무르주 주지사로 재임 중인 알렉산드르 코즐로프를 새로이 임명하였다. 이번 행사는 코즐로프 장관이 국제무대에 처음으로 선을 보이는 자리인 셈이다. 반면 트루트네프 부총리는 자리를 계속 유 지하게 되었다. 이번 인사를 통해 지역 전문성과 정책적 일관성을 유지 하면서 보다 적극적으로 극동개발에 나서려는 푸틴의 정책적 실천 의 지를 엿볼 수 있다.

끝으로 올해로 4회에 접어들면서 매년 9월 연례화된 극동 외교의 장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참석함으로써 이제 한ㆍ일ㆍ중 정상 모두가 참여한 경험을 갖추었다. 만약 동북아와 한반 도 정세가 긍정적으로 변화한다면 미래에는 미국과 북한 지도자도 참 여해 동북아판 6자 정상 회동이 성사될 가능성도 기대해 봄 직하다. 물론 역내 신뢰 구축과 평화와 안정이 담보될 경우에 해당될 것으로 러시아를 비롯한 역내 국가들이 해결해야 할 과제 중의 하나가 될 것 이다.

물밑의 합종연횡 : 푸틴-시진핑-아베 회동의 3중주

푸틴 대통령은 금년 3월 18일 대선에서 76.7%라는 압도적 지지를 얻어 재선에 성공하였고, 2024년까지 집권하게 되었다. 이미 당선을 예고한 듯 푸틴은 3월 1일 국정연설을 통해 ‘2024년 동안 세계 경제 5위로 도약’하고 ‘국민의 삶의 질도 획기적으로 진전’시키겠다고 약속 하는 등 새로운 미래 비전을 제시하였다.

비록 재집권에 성공했지만 푸틴 대통령에게 놓여진 대내외적 상황은 그리 녹록치가 않다. 대내적으로는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연금개혁이 국민적 저항에 맞부딪혀 일부 수정하였고, 몇 년간 마이너스 성장을 보인 경제 침체 상황도 크게 개선되지 않은 상황이다. 새로운 성장 동력을 구하고, 새로운 도약의 계기가 필요한 입장이다. 대외적으로 푸틴정 부는 여전히 ‘강국 러시아’ 대국주의에 기초한 실용적 신전방위 강대국 노선을 견지하고 있다. 서방측의 대러 제재 지속, 미 대선개입 의혹과 스크리팔 부녀 암살 미수사건 등이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발목을 잡고 있다. 러시아는 크림반도 병합에 따른 미국과 서방측의 대러 제재 공세 에 대처하고, 새로운 활로로서 동방을 살펴보고 소위 신동방정책을 펼 치고자 하고 있다. 또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과정이 진행되 는 격변의 시기에 나름 역할과 영향력을 제고하고자 한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금년 6월 푸틴의 중국 방문시 정상회담을 하였 고, 7월 BRICS 정상회담에서도 만난 바 있다. 중국은 일대일로, 중국몽을 실천하기 위한 후원국으로 러시아를 생각하고 있으며, 미·중 무역 전쟁과 세력전이 와중에서 러시아의 지원과 지지가 필요한 입장이다. 역내 안보질서 구도의 측면에서 중·러 모두 미일동맹에 대응하는 세력 균형의 축으로써 양국 간 전략적 동반자 관계 공고화가 절실한 상황이 다. 러시아가 사상 최대 규모로 실시하고 있는 ‘동방-2018’ 훈련에 중 국이 참여하고 있는 것도 이의 연장선에 이해할 수 있다.

아베 총리는 동방경제포럼에 개근 중이다. 금년 5월에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에 참석하였음에도 연이어 푸틴이 주관하는 행사 에 참석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뿐만 아니라 푸틴 대통령 과도 개인적 친분을 쌓아가고 있으며, 8개항 경제협력 구상을 제시하 고 실행에 옮기는 등 러일관계 개선에도 적극적이다. 물론 러ㆍ일 평화 협정 체결과 북방 4개 도서문제를 해결하려는 의도가 담겨져 있지만, 길게는 중국의 부상을 나름 견제하려는 원려(遠慮)도 담겨져 있다. 경협 증진을 지렛대로 활용해 러시아의 후원과 지지를 이끌어 내 보려 는 것이다.

이렇듯 세 지도자는 같고도 다른 전략적 입장과 대내외적 상황에 놓 여 있다. 현재 한반도를 위요한 국제질서는 미·중 무역전쟁, 중·러 긴밀 화, 중·일 군비경쟁, 러·일 경협 증진, 미·러 갈등 지속, 일련의 남·북, 북·미 정상회담 등 동북아 질서 재편과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 축 과정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소위 투키디데스 함정(Thucydides trap), 지정학의 귀환(return of geopolitics), 신냉전(new cold war), 초불확실성(hyper-uncertainty)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져 있다. 푸틴-시진핑-아베 3자 회동은 역내 국제질서 재편 움직임에 조응하고, 한반도를 위요한 국제환경 변화 속에서 국익 극대화를 위한 전략 게임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이번 동방경제포럼에서 펼쳐진 ‘러·중·일 전략 체스판’은 역내 미·중 경쟁의 클 틀 속에서 양자, 다자 협의를 통해 다양한 정책적 함의를 지닌 결과를 낳을 것이다. 남북관계 못지않게 주변국 들의 향배에도 주목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북방의 새로운 블루오션을 찾아서

금년 6월 문재인 대통령은 러시아를 국빈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TSR, TKR연결사업, 나진-하산 물류사업, FTA 협상 등 양국 경협 사안과 한반도 정세에 대해서 논의하였다. 러시아의 신동 방정책과 접점을 이루는 신북방정책을 추진하면서 작년도에 이미 북방 경제협력위원회를 구성하였고 9-브릿지(조선, 항만, 북극항로, 가스, 철도, 전력, 일자리, 농업, 수산 등 9개 분야를 지칭) 등 구체적인 한· 러 협력의 청사진도 마련하였다. 

이미 5월에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 제1차 한ㆍ러 협의회 및 제2차 한국 투자자의 날 행사를 개최한 바 있다. 지금 극동·시베리아지역에서는 18개의 선도개발구역, 블라디보스토크 자유항, 프리모리예 프로젝트, 가스관 연결사업, 동북아 슈퍼 그리드, 극동 물류 네트워크 등 거대 사업들이 주목받으며 떠오르고 있다.

우리로서는 동방경제포럼이 담고 있는 지정학적, 지경학적 의미를 잘 파악하고, 북방에서 벌어지고 있는 커다란 변화 움직임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역내 국제질서 재편과정에서 해륙국가(海陸國家)로서의 전략적 위상을 잘 가꾸어 나감은 물론 향후 한·러 전략적 동반자관계가 내실화되고 동북아·한반도 평화와 번영도 이루어 나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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