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에서의 한반도 비핵화 방안 협의 방향 

[정세와 정책] 2018-8호 (2018.9.11)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

김정은 위원장의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 비핵화’ 언급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단장으로 하는 대북 특별사절단은 지난 9월 5일 방북해 한반도 비핵화 시간표와 관련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입장을 확인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정 실장은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 내에 북한과 미국 간 70년 적대 역사를 청산하고 북·미 관계를 개선해 나가면서 비핵화를 실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김정은 위원장의 발언은 트럼프 행정부의 현 임기가 종료되는 2021년 1월 이전에 북한 비핵화를 완료하면서 동시에 북·미 관계를 정상화하고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을 그가 희망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얼마 전 미 언론 인터뷰를 통해 김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1년 내 비핵화’를 거론한 사실이 최근 국내에 알려지기도 했지만, 김 위원장의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 내 비핵화’라는 시한 언급이 이번에 다시 공개됨으로써 향후 북한 비핵화와 대북 보상에 대한 협상이 본격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현 임기 내에 북·미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양국 관계를 개선하면서 비핵화를 실현하고 싶다는 김정은 위원장의 입장은 2020년 11월에 재임을 위한 대선을 치러야 하는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매우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만약 2020년 대선 이전에 북한 비핵화가 완료되면, 트럼프 대통령은 그것을 자신이 거둔 최대의 외교적 성과로 대내외에 홍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트럼프 행정부로서는 북한 비핵화가 완료되는 시점에 북·미 관계 정상화와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을 거부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남북 정상의 ‘한반도 비핵화 방안 협의’ 합의

또한 대북 특별사절단은 9월 18일부터 20일까지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면서 북측과 특히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실천적 방안’을 협의하기로 하는 중요한 성과를 거두었다. 핵 문제에 관한 한 과거에 북한은 미국과는 논의해도 한국과는 논의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간의 고위급회담에서 북·미 양측이 접점을 발견하는데 실패한 후 남북 정상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실천적 방안’을 직접 논의하기로 함으로써 북한 비핵화와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지게 되었다.

이렇게 중차대한 대북 협상을 성공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생각하는 ‘한반도 비핵화’의 의미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지난 9월 6일자 북한 로동신문은 김정은 위원장이 남한 특사단을 만나 “조선반도에서 무력충돌위험과 전쟁의 공포를 완전히 들어내고 이 땅을 핵무기도, 핵위협도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자는 것이 우리의 확고한 입장이며 자신의 의지라고 비핵화 의지를 거듭 확약”했다고 밝혔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의 이 같은 언급에 비추어볼 때, 김정은 위원장이 생각하는 한반도 비핵화는 기본적으로 핵무기와 핵위협의 제거를 의미하는 것으로, 핵무기 운반수단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제거까지도 이에 포함되는 개념으로 해석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 실현가능한 ‘한반도 비핵화’ 목표

만약 한·미가 북한의 ICBM과 핵탄두의 해외 반출을 넘어서서 북한 핵시설의 완전한 해체와 은닉 시설의 존재 여부에 대한 철저한 검증까지를 ‘한반도 비핵화’의 목표로 설정한다면, 이와 같은 ‘한반도 비핵화’ 수준은 트럼프 대통령의 현 임기 내에 실현되기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북한의 영변 핵 단지에만 390개 이상의 건물이 존재하고, 북한의 핵무기 보유량은 많게는 50개 안팎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같은 북한의 핵능력을 고려하면, 2021년 1월까지 모든 핵시설과 핵탄두, 핵물질 등을 폐기하고 혹시 은닉 중인 시설이 없는지 완벽하게 검증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이와 관련해서 안진수 전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 책임연구원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경우 핵무기 7개에 핵시설 하나뿐이었는데도 검증에 3년 이상이 걸린 것으로 안다”며 “미세한 부분까지 완벽하게 검증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연합뉴스, 2018/09/06).

만약 한·미가 북한의 핵무기와 핵위협의 제거, 원자로와 재처리시설의 ‘영구 불능화,’ 우라늄농축시설의 해체를 ‘한반도 비핵화’의 목표로 설정한다면, 이러한 목표는 트럼프 대통령의 현 임기 내에도 달성될 수 있을 것이다.

안진수 전 책임연구원은 “‘어떤 핵 폐기냐’의 문제인데, 핵시설을 다시 사용할 수 없는 정도로 만드는 데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며 “핵무기를 해체해서 해외 반출하고 원자로와 재처리시설을 ‘영구 불능화’시키고 우라늄농축시설을 해체하는 것은 1년 안에도 가능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도 “결국 비핵화 기간은 어느 정도 수준에서 검증하느냐가 관건인데, 핵무기와 핵물질에 초점을 맞춘다면 그다지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며 “핵시설의 완전 폐기와 제염까지 다 하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르나 그것은 미국의 큰 관심사가 아닐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연합뉴스, 2018/09/06).

그러므로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현 임기 내에 북한의 핵무기와 핵위협의 제거, 원자로와 재처리시설의 ‘영구 불능화,’ 우라늄농축시설의 해체를 목표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만약 북한이 2021년 1월 이전에 ICBM과 핵탄두를 해외로 이전하고, 원자로와 재처리시설을 ‘영구 불능화’하며, 우라늄농축시설을 해체하면, 미국과 일본이 북한과 관계를 정상화하고, 남․북․미․중이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하며, 국제사회는 대북 제재를 상당한 정도로 완화 또는 전면 해제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ICBM이 해외로 모두 반출된다면, 북한은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어도 그것을 가지고 미국을 위협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북한의 핵위협은 현저하게 감소하게 된다. 북한이 ICBM을 포기하게 되면 미국에 대한 핵억지력이 사라지게 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고 한국이나 일본 공격을 감행하기 어렵게 된다. 그러므로 북한의 ICBM 폐기는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의 안보에도 매우 큰 도움이 된다. 게다가 북한의 핵탄두까지 모두 해외로 이전되면 북한의 핵위협은 사실상 거의 사라지게 되는 셈이다.

북한의 ICBM과 핵무기 폐기를 위한 4단계 접근

김정은 위원장은 단계적 접근과 동시행동을 강조하고 있으므로 트럼프 대통령의 현 임기 내 북한의 ICBM과 핵탄두 폐기 등을 4단계에 걸쳐 진행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5월 시진핑 총서기와의 제2차 북·중 정상회담에서 “조(북)-미 대화를 통해 상호 신뢰를 구축하고 유관 각국이 단계별로 동시적으로 책임 있게 조처를 하며 조선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 프로세스를 전면적으로 추진해 최종적으로 조선반도 비핵화와 영구적인 평화를 실현하길 바란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러므로 우선 1단계로 2018년 말까지 북한이 ICBM의 50%를 해외 반출하고, 2단계로는 2019년 여름까지 나머지 50%도 반출하며, 3단계는 2019년 말까지 핵탄두의 50%를 해외 반출하고, 마지막으로 4단계에서는 2020년 여름까지 나머지 50%를 반출하면서 원자로와 재처리시설을 ‘영구 불능화’하고 우라늄농축시설을 해체하며, 각 단계별로 국제사회가 북한에 상응하는 보상을 제공하는 방안을 고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만약 북한이 이 같은 비핵화 일정표에 합의하고 올해 연말까지 ICBM의 50%를 우선적으로 해외 반출한다면, 미국은 정치적 선언 수준의 ‘한반도 종전선언’을 수용하고 문재인 정부가 올해 내에 남북 철도, 도로 착공식을 진행할 수 있도록 대북 제재를 부분적으로 완화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북한이 2019년 여름까지 ICBM을 전량 폐기하면, 북한의 의류와 수산물 수출 및 경협 등 민생 분야와 관련된 UN안보리의 대북 제재를 먼저 해제시켜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개성공단 재가동과 금강산 관광 재개 및 남북 철도, 도로 연결을 위한 공사의 본격화가 가능하도록 국제사회는 비핵화 단계별로 대북 제재를 더욱 완화해야 할 것이다.

만약 북한이 2019년 말까지 핵탄두의 50%를 우선적으로 폐기한다면, 미국은 북한과 초보적 외교관계(연락사무소 또는 영사관 개설)를 수립하고 남․북․미․중이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협상을 본격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북한이 2020년 여름까지 핵탄두를 해외 반출하고 원자로와 재처리시설을 ‘영구 불능화’하며 우라늄농축시설을 해체하면, 미국과 일본이 북한과 관계를 정상화하고, 남․북․미․중이 평화협정에 서명하며, 유엔안보리의 대북 제재도 대폭 완화 또는 대부분 해제해야 할 것이다.

북한의 ‘자발적 비핵화’와 대북 보상의 일정표

만약 북한이 ICBM과 핵탄두의 폐기를 신속하게 진행할수록 북한이 그만큼 빠르게 보상을 받을 수 있다면, 북한은 비핵화에 더욱 적극적인 태도를 보일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 정부는 미 행정부와 긴밀히 상의해 북한 비핵화의 진전 단계별로 북한에게 어떠한 보상을 제공할 것인지 북한 비핵화와 대북 보상의 이행 일정표를 신속하게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물론 미국이 북한에 주고자 하는 보상과 북한이 요구하는 보상이 다를 수 있으므로 북한의 비핵화와 보상의 로드맵은 북․미 또는 남․북․미․중의 고위급 회담을 통해 작성해야 할 것이다.

비핵화를 위해 북한이 취해야 할 조치들의 목록을 작성하는데 있어서 한국 정부는 북한의 입장을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핵무기를 먼저 폐기하고, 나중에 신고 후 검증을 받은 남아공처럼 북한도 ‘자발적으로’ 비핵화를 먼저 진전시키고 나서 그 다음에 신고와 검증의 프로세스를 진행하는 방안을 선호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북한에게 무조건 처음부터 ‘핵 신고 리스트’의 제출을 요구하는 것은 부적절할 수도 있다.

북한의 ICBM과 핵무기의 해외 이전, 원자로와 재처리시설의 ‘영구 불능화’, 우라늄농축시설의 해체 후 한국정부는 2020년 11월 대선에서 선출될 미 대통령의 4년 임기 내에 북한 핵시설의 완전 해체와 철저한 검증을 목표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미는 북한 핵무기의 완전 폐기를 목표로 해야겠지만, 설령 북한이 핵무기 몇 개를 은닉하는데 성공하더라도 그것 가지고 선제공격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현실적 고려가 필요하다.

2020년 이후 북한 핵시설의 완전한 해체 및 검증까지 이루어지면, 국제사회는 사용 후 핵연료의 해외 반출을 조건으로 북한의 경수로(LWR) 건설을 허용 및 지원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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