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제재와 인도주의적 면제

도경옥 (통일정책연구실 북한인권연구센터 연구위원)

[요약]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제재가 대상국 주민들에게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완화하기 위한 안전장치로서 인도주의적 면제(humanitarian exemption)를 부여해 왔다. 그러나 여러 제재 체제에서 인도주의적 면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우려가 제기됨에 따라, 인도주의적 면제 메커니즘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이 모색되고 있는데, 개선의 방향성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인도주의 부문에서 상시적 면제(standing exemption)를 부여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인도주의적 면제에 대한 이해를 제고하고 면제 부여의 기준과 절차에 대한 정보 접근성을 강화하는 것인데, 이번에 유엔 대북제재위원회가 채택한 대북 인도주의적 지원 가이드라인은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배경에 비추 어, 동 가이드라인은 대북 인도주의적 활동에 대한 장애물이 아닌 대북 인도주의적 활동을 촉진하기 위한 조치로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회원국들과 국제기구 및 비정부기구는 가이드라인에 따라 보다 적극적으로 대북 인도주의적 활동을 추진해 나갈 필요가 있다.

2018년 8월 6일 유엔  대북  제재위원회(1718위원회)는  ‘북한에  인도주의적 지원을 제공하기 위한 면제 관련 가이드라인(Guidelines  for  Obtaining  Exemptions to Deliver Humanitarian Assistance to the Democratic People' Republic of Korea, 이하 “대북 인도주의적 지원 가이드라인”이라 한다)'을    채택하였다.  대북제재 위원회는 가이드라인을 통하여 회원국들과 국제기구 및 비정부기구가 북한 주민들을  위한  지원 및 구호 활동을 위하여 인도주의적 면제(humanitarian exemption)를 신청할 때 참고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기준과 절차를 제시하였다. 

대북 인도주의적 지원 가이드라인은 제재 국면에서 대북 인도주의적 지원이 감소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진 가운데 나온 것으로, 향후 국제사회의 대북 인도주의적 활동을 활성화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다만, 이러한 가이드라인의 채택이 실질적인 조치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인도주의적 면제 전반에 대한 이해를 제고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인도주의적 면제의 필요성

제재는 전쟁 또는 무력사용을 대체하는 수단으로 빈번하게 활용되어 왔으나, 제재 대상국 정부의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치기 어려운 일반 주민에 대한 고통 부과라는 비의도적 효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이라크 제재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일어난 최악의 재앙에 필적하는 인도주의적 재앙”을 야기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이에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제재가 대상국 주민들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는데, 크게 다음의 세 가지로 구분될 수 있다. 

첫째, 한 국가의 경제 시스템 전반에 타격을 가하여 무분별한 피해를 초래하는 포괄적 제재(comprehensive sanction) 방식 대신 특정한 개인·단체·부문·지역에 대해서 선별적으로 제재를 가하는 표적 제재(targeted sanction) 방식을 사용하는 것이다. 

둘째, 제재가 주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모니터링하고 평가하는 것이다. 셋째, 인도주의적 면제를 부여하는 것이다.

1994년부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모든 제재는 표적 제재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이후 개별적 제재(개별국가나 국가집단이 다른 국가의 정책 변화를 강제하기 위하여 부과하는 조치로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유엔 헌장 제41조에 따라 취한 조치를 제외한 조치) 역시 표적 제재 방식을 주로 채택하고 있다. 표적 제재 방식으로의 진화는 제재의 목적 달성의 측면과 비의도적 효과의 최소화 측면을 모두 고려하였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부문에 대한 표적 제재는 사실상 포괄적 제재에 버금가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으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표적 제재와 개별 국가들의 표적 제재가 결합하는 경우 포괄적 제재 조치와 같은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따라서 제재가 어떠한 형식을 취하고 있든지 간에 그것이 주민들에 미치는 영향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및 평가하고, 그 결과에 따라 제재 조치의 적절성을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제재가 대상국 주민들에게 미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을 완화하기 위한 안전장치로서 인도주의 부문에서의 예외를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1968년 남로디지아 제재 체제에서 인도주의적 면제를 처음 도입한 이래 모든 제재 체제에 인도주의적 면제를 포함시켜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제도를 둘러싼 논쟁은 지속되고 있는데, 찬성론자들의 경우 법적 명확성을 제공함으로써 인도주의적 지원을 용이하게 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 인도주의적 면제는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반대론자들은 명시적으로 인도주의적 면제를 규정하는 것은 인도주의적 조치를  위해서는 항상 그와 같은 면제가 필요하다는 것으로 해석되어  궁극적으로는  인도주의적  조치를  제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제재 대상인 개인이나 실체에게 재정적 지원을 제공하기 위한 것으로서 인도주의적 면제가 악용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런데 반대론으로 분류되는 견해들도 제재 국면에서의 인도주의적 조치의 필요성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므로, 이 문제는 인도주의 면제라는 제도 자체의 존폐보다는 인도주의적 면제의 효과적인 설계 및 이행이란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이 보다 적절할 것으로 생각된다.

인도주의적 면제의 개선 논의

냉전 종식 이후 안전보장이사회가 부과한 여러 제재 사례에서 인도주의적 면제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남에 따라, 1990년대 후반부터 인도주의적 면제 메커니즘의 개선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되었다. 유엔 사회권위원회는 1997년 채택한 ‘경제제재와 경제적· 사회적·문화적 권리 존중의 관계(The relationship between economic sanctions and respect for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rights)’에 관한 일반논평 제8호에서 인도주의적 면제가 제재 대상국 내에서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을 보장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간주되는 것과는 달리, 실제로는 소기의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면제 조치의 범위가 매우 제한적이고, 자의적이고 비일관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으며, 인도주의적 물품의 수입 지연 및 혼란으로 인하여 자원 부족이 초래되고 있다는 것이다. 유엔 총회의 경우 1997년 결의 제51/242호에서 인도주의적 필요는 제재 대상국의 개발 단계, 지역, 천연자원 등에 따라 다룰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인도주의적 면제 수립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또한, 인도주의적 면제에 대한 보다 표준화된 접근과 면제 신청의 신속한 처리를 강조하였다. 이 같은 논의들을 통하여 인도주의적 면제 메커니즘은 점차 개선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개선의 방향성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인도주의 부문에서 상시적 면제 (standingexemption) 를 부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도주의적 면제에 대한 이해를 제고하고 면제 부여의 기준과 절차에 대한 정보 접근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먼저 첫 번째 측면을 살펴보면, 인도주의적 면제는 제재위원회가 사안별로 승인을 하는 방식을 통해 이루어져 왔으나, 이러한 절차가 인도주의적 활동에 있어 상당한 지연을 초래한다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상시적 면제 방식, 즉 제재 결의 자체에 인도주의 부문에 대한 면제를 직접적으로 명시함으로써 제재위원회로부터의 승인을 요하지 않는 방식도 활용되고 있다. 

소말리아/에리트리아 제재 체제가 대표적인  예인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2013년에 채택한 결의 제2111호에서 유엔, 유엔의 전문기관 또는 프로그  램, 유엔 총회에서 옵서버 지위를 획득한 인도주의  단체, 그리고 이들의 이행 파트너가 소말리아에서 긴급하게 요구되는 인도주의적 지원을 적시에 제공하는 데 필요한 자금, 기타 금융자산 또는 경제적 자원의 지급에  대해서는  자산  동결  조치가  적용되지  않도록  하였다. 

이 같은 면제 방식은 모든 인도주의적 단체가 그 적용 대상은 아니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으나, 기본적으로는 인도주의적 조치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최근에는 소말리아 제재 체제의 인도주의적 면제 모델에 기초하여 다른 제재 체제도 인도주의적 행위자들에 대한 상시적 면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요구가 제기되고 있다. 나아가 제재 체제 전반에 걸쳐 보다 상시적이고 광범위한 인도주의적 면제 모델의 도입 가능성도 논의되고 있다.

다음으로 두 번째 측면을 살펴보면, 인도주의적 면제가 인정됨에도 불구하고 인도주의적 조치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대체로 다음의 두 가지 이유에 기인한다. 첫 번째 이유는 인도주의적 면제 하에서 어떠한 유형의 조치들이 허용되는지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 같은 이해 부족은 관련 행위자들의 제재 규정 위반을 초래할 수도 있고 과잉준수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인도주의적 개입을 불필요하게 방해하는 측면이 있다. 

두 번째 이유는 인도주의적 면제 부여의 기준과 절차에 대한 정보 접근이 어렵다는 점이다. 인도주의적 면제의 이용가능성 및 범위에  대한 정보 부족은 인도주의적 면제의 효율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에 대해 몇몇 제재위원회들은 인도주의적 면제 메커니즘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채택하여 제재위원회 웹사이트에 게시함으로써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이번에 채택된 대북 인도주의적 지원 가이드라인은 이 같은 노력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대북 인도주의적 지원 가이드라인의 주요내용

대북 제재 체제의 경우 제재위원회가 사안별로 승인하는 방식을 통해 인도주의적 면제를 부여하고 있다. 먼저 가이드라인은 회원국들과 국제기구 및 비정부기구에 대하여 다음의 사항이 포함된 면제 신청서를 제출할 것과 대략 6개월 단위로 면제를 신청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 북한 민간인 주민들을 위하여 북한에 제공하고자 하는 인도주의적 지원의 성격
∙ 북한 측 수혜자에 대한 설명과 수혜자 선정 기준
∙ 위원회의 면제를 필요로 하는 이유
∙ 6개월 내에 북한에 제공될 물품 및 서비스의 수량 및 세부사항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과 목적 및 대상
∙ 6개월 내 북한에 대한 제공 예정일
∙ 제공 경로 및 방법(선적에 사용되는 입출항 항구 포함)
∙ 신청서 제출 시점에 확인가능한 모든 관련 당사자
∙ 제공과 관련되는 금융거래
∙ 모든 제공 예정 물품 및 서비스의 목록이 포함된 부속서(수량 및 예정 출하일 포함)
∙ 북한에 제공하는 지원이 의도된 목적으로만 사용되며 금지된 목적으로 사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장하는 조치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국제기구 또는 비정부기구는 다음의 세 가지 방법을 통하여 면제를 신청할 수 있는데, 다만 유엔 기관,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와 국제적십자연맹(IFRC), 국제 올림픽위원회(IOC)의 경우에는 제재위원회에 직접 면제를 신청할 수 있다.

1. 회원국: 결의는 회원국에 대하여 의무를 부과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을 제공하고자 하는 국제기구 또는 비정부기구를 대신하여 면제 신청서를 제출해야 하는 주체는 회원국이다.

2. 유엔: 회원국이 그와 같은 요청을 위원회에 전달할 수 없는 경우 북한 주재 유엔 상주 조정자 사무소(Office of the United Nations Resident Coordinator in the DPRK)가 위원회에 면제 신청을 하고자 하는 국제기구 또는 비정부기구의 연락사무소(liaison) 역할을 할 수 있다.

3. 위원회 사무국: 회원국과 북한 주재 유엔 상주 조정자 사무소가 국제기구 또는 비정부 기구를 대신하여 면제 신청서를 제출할 수 없는 경우 국제기구 또는 비정부기구는 위원회 사무국에 직접 면제 신청서 제출할 수 있다. 면제 신청서가 다음의 요건을 충족한다면 위원회 사무국은 위원회에 면제 요청을 전달할 것이다.

∙  요청 주체가 과거에 북한이나 다른 국가들에 대해서 지원을 한 기록이 있는 국제기구 또는 비정부기구여야 하며, 비정부기구의 경우 관련 회원국에 의해서 국내적으로 승인되어야 함.
∙ 북한에 제공하고자 하는 지원의 성격이 인도주의적 목적과 북한의 민간인 주민을 위한 것이어야 함.
∙  면제 요청은 위에서 언급한 정보를 포함하고 있어야 함.

그 밖에도 가이드라인은 제재위원회의 승인 절차와  관련하여 적절한 시간 내에 결정을 내리기 위하여 가능한 한 빨리 면제 요청을 처리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평가 및 향후 방향

이번에 채택된 대북 인도주의적 지원 가이드라인은 여타 제재 체제에서 제시된 가이드라인에 비해 면제 신청에 포함되어야 할 내용, 면제 신청 절차, 면제 승인 절차 등을 매우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제재 국면에서 인도주의적 면제의 필요성과 가이드라인  채택 배경을  고려할  때, 대북 인도주의적 지원 가이드라인은 대북 인도주의적 활동에 대한 장애물이 아닌 대북 인도주의적 활동을 촉진하기 위한 조치로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회원국들과 국제기구 및 비정부기구는 가이드라인에 따라 보다 적극적으로 대북 인도주의적 활동을 추진해 나갈 필요가 있다. 대북 제재위원회는 인도주의적 면제 부여의 기준과 절차에 대한 정보 접근성을 강화해 나가는 것과 더불어 인도주의적 면제 승인과 관련하여 자의성과 비일관성의 문제가 제기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소말리아 제재 체제의 인도주의적 면제 모델에 기초하여 인도주의적 행위자들에 대한 상시적 면제를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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