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만남이 될 것으로 기대했던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이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채 끝났다. 만남 자체로도 의미가 크지만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크다. 포괄적으로 비핵화 원칙에는 합의 했지만 당초 기대했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불가역적인 핵폐기(CVID)는 찾아 볼 수 없었다. 폼페오 국무장관이 강조했던 검증이나 볼튼 보좌관이 언급했던 소위 ‘초기적재(front loading)’ 방식도 볼 수 없다. 

더욱 우려되는 상황은 정상회담 종료 후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에서 나왔다.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일방적으로 중단한다고 언급한 것이다. 소중한 비핵화 협상 자산을 그것도 한국 정부와의 긴밀한 협의 없이 소진해 버렸다. 

비핵화를 위해 정상회담을 했는데 비핵화에 대해서는 모호성만 남고 한미동맹 약화의 가능성만 높이는 결과로 나타났다. 한국 정부가 어떠한 입장을 보이느냐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1. 미북 정상회담 합의문 평가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단독, 확대, 업무오찬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 문제와 평화체제 문제를 논의했다. 그리고 회담을 마친 후 양 정상은 공동합의문에 서명하게 된다. 동 합의문은 총 4개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내용은 다음 <표 1>과 같다.

<표 1> 미북 정상회담 공동합의문 4개항

<표 2> 남북, 미북 주요 비핵화 합의 내용

상기 공동합의문은 관계개선, 평화체제, 비핵화, 유해송환을 핵심 내용으로 한다. 일반적으로 외교적 합의는 일반 원칙과 양자적 의무, 그리고 각각의 의무를 기술하는데, 동 합의는 이러한 측면에서는 무난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전반적인 흐름이 미북간 대립에 문제의 원인이 있다는 것으로 시작하고, 가장 중요한 핵문제가 관계개선과 평화체제 이후에 오는 구성은 아쉽다. 핵문제를 먼저 기술했어야 하는데, 흐름상 미국의 적대시정책으로 인해 핵문제가 발생했다는 식의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합의문의 내용이 구체성을 결여하여 과거의 합의보다 후퇴했다는 비판이 불가피하다.

공동합의문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미북 정상은 양국관계의 개선을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했다. 다만 어떠한 과정을 거쳐 관계를 개선하고 어느 시점에 연락사무소나 대사관을 설치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구체적인 내용을 담지 않고 있다. 그 결과 후속 회담에서 비핵화의 로드맵이 나오지 않으면 단지 원칙적 합의에 불과한 내용으로 볼 수 있다.

다음으로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지속적(lasting)이고 안정적(stable)인 평화체제를 강조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지속적’이란 표현은 과거 9.19 공동성명이나 4.27 판문점 선언에서 사용한 항구적 평화체제와 같은 의미로 볼 수 있는데 ‘안정적’이란 표현은 사실 9.19 공동성명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4.27 판문점 선언에서 사용한 ‘공고한’의 의미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데 아마도 평화체제 구축 과정이 돌발 상황 없이 무난히 진행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한반도 비핵화 부분은 아주 평범하게 기술하고 있다. 4.27 판문점 선언에서 합의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반복하고 있다. 단 차이점은 판문점 선언에는 각자의 할 바를 한다라고 표현했지만 미북 공동합의문에는 북한이 비핵화를 노력한다고 표현했다는 점에서 북한의 의무를 강조한 점이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이는 9.19 공동성명에 비해서도 후퇴한 기술인데 당시 ‘검증 가능한 비핵화 목표에 따라 북한의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 포기’에 합의했다. 이로 인해 미북 정상회담 공동합의문은 한국과 미국에서 많은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표 2>에 기술된 남북간 또는 미북간 비핵화 합의의 내용을 보면 북한 핵능력은 고도화 되고 있음에도 비핵화 수준은 후퇴했음을 볼 수 있다.

<표 2> 남북, 미북 주요 비핵화 합의 내용

다만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노력의 주체가 북한으로 기술된 점은 판문점 선언에 비해 긍정적이라 할 수 있다. 판문점 선언은 비핵화 목표를 위한 노력의 주체가 한국과 북한이 공동으로 적시되어 있기에 그 내용적 측면에서 아쉬움이 많았는데 이번 미북 정상회담에서는 이를 북한의 의무로 명시했다.

일부에서는 미북간 공동합의문에 대해 한술에 배부를 수 있겠냐며 후속협상을 통해 풀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의 임기도 많이 남아있고 대북 경제제재가 그나마 작동하는 현 상황에서 얻어 낸 것이 이 정도인데, 임기가 줄고 제재 이행이 약화된 이후 더 많은 양보를 얻어 낼 수 있을지 걱정이다. 협상은 그 때 잘해야지 후일을 기약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이상을 고려할 때 전반적으로 금번 미북 정상회담 합의문은 구체성이 결여된 원론에 머물렀으며, 특히 비핵화 부분은 과거의 합의문에 비해 퇴보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이러한 협상의 배경이 궁금할 따름인데,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첫째, 아마도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과 부적절한 합의를 하는 것보다는 포괄적 합의를 하고 후속 협의에서 미국의 입장을 관철시키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북측이 소위 검증이나 비핵화 시간표와 관련해서 과도한 보상을 요구했을 경우 북측 요구사항을 받기보다는 포괄적 합의라도 하자고 선택했을 수 있다. 이 경우 향후 2-3개월 동안 미북간 비핵화 협상이 얼마나 빠르게 진전될 수 있을 지가 정상회담을 평가할 수 있는 척도가 될 것이다.

둘째, 미 측의 준비 부족 또는 북한의 비협조로 타협안이 만들어지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을 경우를 가정할 수 있다. 이 때 아무런 합의가 없을 경우 트럼프 행정부에 가해질 미국 내 여론 악화가 우려되기에 차선책으로 2000년 10월 ‘북미 공동 코뮤니케’의 내용과 유사한 방식으로 합의를 하게 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 발언과 같이 시간이 부족해 선택의 여지가 없어 그런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출발점이 북미간 공동 코뮤니케였는지 몰라도, <표 3>에서 보는 바와 같이 양자간 내용 및 형식상의 유사성이 크다.

<표 3> 북미 정상회담 합의문과 2000년 북미 공동 코뮤니케 비교1

 

2.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 평가

정상회담 합의문 못지 않게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한반도 안보에 많은 우려를 가져왔다. 특히 한미동맹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은 상당한 우려를 자아낸다.

먼저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일방적으로 중단하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정확한 맥락을 살펴보면 먼저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에 어떠한 안전보장(assurance)을 구체적으로 제공할 것인지, 그것은 군사력 축소도 포함하고 있는지?”2에 대해 질문을 받았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그렇지 않다”고 답하면서, 보다 구체적인 답을 해달라는 질문에 대해 “우리는 아무것도 줄이지 않는다. 솔직히 선거 때 이야기 했던 것처럼 최상의 경우 언젠가는 우리 군인들을 철수시키고자 한다. 군대를 철수하고 싶다. (한 번 더 반복) 우리는 현재 3만 2천명의 군인이 한국에 있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은 아니다. 언젠가는 그렇기 바란다. 단 지금은 아니다”라고 답을 하며 주한미군 철수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언급을 했지만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그 다음에 “우리는 앞으로의 협상이 가야 할 방향으로 간다면 전쟁 연습을 중단할 것이다. 그로 인해 우리는 많은 돈을 절약할 수 있을 것이다. 정말로 많은 돈이 들어가고 있다. 게다가 그것은 매우 도발적이다”라고 언급했다. 대화가 지속되는 동안이란 전제를 달기는 했지만 중요한 협상자산인 연합군사훈련을 일방적으로 중단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은 연합군사훈련을 도발적(provocative)이라고 표현함으로써 그간 동 훈련에 반대해 온 북한의 논리를 그대로 수용하는 실수를 범했다. 과거의 연합군사훈련이 북한의 도발에 대응하는 방어적 성격의 훈련이었음에도 방금 전 김정은 위원장에게 들었던 말의 잔상이 남아 있었던 것이었는지 북측의 표현을 그대로 받은 것이다.

문제는 또 있다. 이러한 연합군사훈련 중단 발언이 한국 정부와 사전 조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청와대는 진의를 확인하고 있다면서 “”미국 측에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해달라고 했지만 답변이 오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중요한 협상을 앞두고 충분히 예견된 주제에 대해 한미 양국이 논의를 제대로 하지 못했음을 드러낸 것이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이 “매우 능력있다(very talented)”고 하고 “26살에 넘겨받은 권좌를 운영하는 것은 오직 소수만이 가능하다”고 언급하는 등 과도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외교적 수사에 불과하지만 자칫 북한의 실체를 오판할 수 있는 여지를 드러낸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전통적으로 미국의 지도자들은 남북간 대치상황이나 북한의 인권상황을 이유로 북한에 대해 냉정한 접근을 해왔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에 대해 과도한 긍정적 평가와 함께 소중이 지켜온 한미동맹의 핵심 내용이라 할 수 있는 연합군사훈련 중단을 선언했다. 그러면서 북한 위협이 곧 사라질 것이라고 이야기 하는 등 한국의 안보상황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적이고 직관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 북한이 아직 비핵화 조치를 이행하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3. 한국의 안보우려와 대응 방향

한반도 비핵화를 이루어 내기 위해 정상회담을 개최했는데, 구체적 비핵화 합의는 이끌어 내지 못하고 한미동맹만 약화될 수 있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과거 북한의 전략도발에도 한국의 안보와 경제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튼튼한 동맹이 존재했기 때문인데, 비핵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자칫 한미동맹이 먼저 도전을 받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비핵화를 이끌어 내며 한미동맹을 발전시킬 수 있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아야 한다.

비핵화 공조의 강화

먼저 비핵화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내야 한다. 시간이 갈수록 미국의 협상력은 약화될 것이다. 임기는 줄어들고 제재는 점차 이완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자칫 식어갈 수 있는 비핵화 동력을 살리는 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CVID 원칙은 반드시 관철할 수 있도록 협력을 강화해야 하며, 이미 필진이 밝힌 바와 같이 다음과 같은 정책 전개가 필요하다.

첫째, 지금까지 모호성을 유지해왔던 비핵화의 개념에 대해 보다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한국 정부가 생각하고 있는 비핵화가 어떤 의미이고 조치를 포함하고 있는 지를 명확히 하여 그러한 방향으로 협상이 전개되도록 해야 한다. 특히 향후 전개될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북한측 대표와의 협상에 대비해 우리의 요구사항을 정확히 정하고 미 측에 전달해야 한다.

둘째, 미국의 ‘초기적재’ 방식에 대한 지지가 필요하다. 가장 확실한 비핵화 방안에 대한 우리의 긍정적 의사표명을 주저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비핵화 과정이 장기화되서는 안 된다는 점을 적극 제기해야 한다.

셋째, 제재 해제 역시 너무 빨리 이루어져서는 안 되며 비핵화 수준과 속도에 발맞추어야 한다. 한국이 제재 이행의 취약한 고리로 인식되어서는 안 되며, 비핵화를 위해 해야 할 일들은 충실히 이행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남북관계 개선을 너무 서두르다 보면 비핵화 협상에서 사용할 협상수단의 힘이 약화된다. 따라서 북한의 초기 이행 조치가 어느 정도 가시화 되어 제재가 해제되는 순간 까지는 철저한 안보중심으로 접근해야 한다. 선(先) 안보 후(後) 경협의 원칙이 지켜져야 비핵화와 남북관계 개선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넷째, 북한의 비핵화 수준에 부합하는 충분한 경제적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기에 북한에 대량현금이 지원되어서는 안 되며, 북한과의 다양한 협력 사업을 통해 자연스럽게 변화를 유도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보상 비용 역시 한국과 주변국간 적정 비율의 분담을 통해 형평의 원칙이 적용되도록 해야 한다.

다섯째, 종전선언을 급하게 서둘러서는 안 된다. 미북 정상회담의 성과에도 종전선언이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은 향후 시간이 걸릴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만 이를 급히 서두를 경우 한미간의 갈등 요인이 될 수 있다. 남북미 종전선언의 전략적 유용성은 인정하지만, 한반도 정세를 주도적으로 조성하는 기회로 활용하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

한미동맹의 지속적 발전

한미동맹을 지속적으로 강화시켜 나가야 한다. 물론 한미동맹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안보전략에서는 핵심적인 수단이다. 북한 위협을 넘어서 주변국의 잠재적 위협까지 고려해야 하는 한국의 입장에서 한미동맹은 북한의 위협이 감소한다 해도 여전히 유용한 억제수단이다. 따라서 보다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동맹 강화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첫째, 한미동맹의 의미와 목적에 대한 재규정을 통해 한미동맹의 연속성에 대한 이유를 확인하고 지향성을 확고히 해야 한다. 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미래 비전을 구상해야 한다. 북한 비핵화에 따른 체제보장은 결국 한미동맹을 얼마만큼 약화시킬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잠재적 위협과 한반도를 넘어서는 한미간 전략협력 방향을 포함한 포괄적인 미래 비전을 구상해야 한다. 이러한 비전의 존재는 미래 한미동맹의 협력 방향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당장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한미동맹에 제기될 다양한 도전을 극복하는 데에도 큰 기여를 할 것이다.

둘째, 연합군사훈련 중단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강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한반도가 아닌 제3의 지역에서 훈련을 하는 방안을 심도 있게 검토해야 한다. 군사력 유지와 대비태세 강화를 위해서는 훈련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비용이 많이 소요되겠지만 가용한 예산을 확보하고, 훈련이 필요한 부대에 우선순위를 둠으로써 전력의 누수를 방지해야 한다.

셋째, 한국의 자체 방위력을 증강해야 한다. 미국의 정책적 변화에 따라 우리의 안보가 흔들리지 않도록 한국방위의 한국화를 추진해야 한다.

넷째, 한미동맹의 조정과정을 비핵화의 결과로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 비핵화를 위해 동맹을 먼저 약화시키거나 포기하는 일을 지양해야 한다. 미북정상회담을 계기로 기대감이 높아짐에 따라 안보현실과는 무관하게 동맹조정 과정을 성급히 추진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한국의 우려를 미국에 적극 전달하고 우리가 우려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미국 내 동맹 지지세력을 강화하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특히 의회에 대한 활동을 강화해서 동맹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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