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제재 해제의 조건-북한의 개혁개방-다자안보체제의 필요성-향후 정보기관의 역할 등 토론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이 20~22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정보, 북한, 그리고 평화'를 주제로 '글로벌 인텔리전스 서밋(GIS)'을 열었다. 마지막 날인 22일에는 '정보의 힘, 평화의 길'을 주제로 종합토론을 가졌다(사진=SPN)

세계 13개국 정보기관 고위관계자 출신 한반도 전문가들이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20~22일 '정보, 북한 그리고 평화'를 주제로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이 개최한 '2018 글로벌인텔리전스서밋(GIS)' 마지막 날인 22일 종합토론 세션에서 대북제재 해제의 조건, 북한의 개혁개방, 다자안보체제의 필요성, 향후 정보기관의 역할 등을 논했다.

Ⅰ. 대북제재 해제: “美, 북한이 비핵화 진정성 보여야 vs. 러, 제재 완화 선행돼야”

미국 측 전문가들은 대북 제재 해제에 앞서 북한이 먼저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셉 디트라니 전 6자회담 미국 측 차석대표는 “북한은 일종의 선언을 먼저 해야 한다. 핵물질 생산 시설과 장거리 미사일 생산시설의 위치를 확실히 밝히고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원하는 만큼 자유롭게 사찰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레고리 트레버턴 전 미국 국가정보위원회(NIC) 의장도 “북한이 제스처 이상의 것을 보여줘야 한다. 북한이 검증을 위한 실질적인 모니터링이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지와 우라늄 농축에 대해 밝히는 등 실질적인 움직임을 보이면 혜택을 받도록 해줘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윌리엄 브라운 전 미국 중앙정보국(CIA) 분석관은 “중국이 북한과 교역을 단절한 게 불과 6개월 전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진정성이 어느 정도인지 드러날 3~4개월 후까지 핵심 제재를 계속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게오르기 톨로라야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산하 ‘경제연구소’ 아시아전략센터 소장은 제재의 효과에 의문을 제기하며 제재 완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제재는 북한 주민들에게만 압박이 될 뿐이지 북한 지도부, 군부, 엘리트층에까지 영향을 미쳤는지는 불확실하다”면서 제재의 효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해결책을 찾자는 분위기가 조성된 상황에서 대북 제재를 유지하면 신뢰를 저해한다. 제재 완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의 현실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전문가들도 있었다.

존 메릴 전 미 국무부 동북아실장은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하는 데는 10년 이상이 걸리는데, 임시적인 성격이 짙은 제재 완화라는 조치를 그렇게 길게 끌고 갈 수는 없다.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가 수사학적으로는 가능하지만 과연 현실성이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제재를 계속 유지하거나 연장하면 북한의 개방에 역효과가 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Ⅱ. 북한의 개혁∙개방: 美, 북한 내부개혁 선행돼야 vs. 中, 개방의 중요성 강조 

미국 측 한반도 전문가들은 대부분 개방에 앞서 내부 개혁이 선행돼야 할 필요성을 제시했다.

브라운 전 분석관은 “북한 경제의 50%는 시장화가 이뤄졌지만, 나머지 50%는 여전히 계획경제 체제로 돌아가고 있다. 경제성장에 앞서 계획경제 체제인 부분을 먼저 개혁해야 한다. 경제개발은 아래서부터 위(bottom-up)로 이뤄져야 한다. 외부로부터의 경제개발은 속도는 빠르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문제가 발생한다. 개방부터 먼저 했다가 망했듯이 개혁되지 않은 경제를 개방하면 큰 재난이다. 개방을 안 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개혁을 안 하는 게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어 북한이 추구해야 할 개혁에 대해서는 “북한은 금융시스템이 존재하지 않아 자금 흐름이 없다. 1962년 당시 한국은 금융부문을 개혁하고 20년 후 세계 최고 수준의 예금률을 달성했다. (국가에 노동력을 제공해야 하는) 노예와 마찬가지인 북한 주민들이 개성공단에 근무하며 직접 임금을 받는다면 자금흐름이 생성돼 경제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존 에버라드 전 평양주재 영국대사도 “개혁과 개방은 구분해야 하는 개념이다. 개혁에 앞서 개방부터 했던 불행한 나라들이 있다”고 브라운 전 분석관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러면서 그는 “북한 정권이 개혁을 추구할 수 있는 역량 자체에 한계가 있다. 국가가 아닌 시장으로부터 소득이 발생하면 통제력을 잃게 될 북한 정권과 지도부가 개혁을 우려하는 면이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반면 유샤오화(Yu, Shaohua) 중국 국제문제연구소 주임은 “개혁과 개방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면서 “개방에 대한 북한의 면역력과 위험 방지능력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강하므로, 앞으로 북한과 많이 교류해야 한다”고 상대적으로 개방의 중요성에 무게를 실었다.

진징이 베이징대 교수는 “북한이 획기적인 노선전환(경제총력건설 노선)을 이뤄 이제 개혁개방으로 들어설 수밖에 없다. 북한에 이미 시장경제요소가 퍼졌고, 사실상 사회의 일부분이 시장경제 요소에 의해 돌아가고 있다”면서 “북한이 개혁∙개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고 강조했다.

. 군부의 영향, 미미할 것: 군 수뇌부 3인 전격 교체

전문가들은 대체로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군 수뇌부 3인방을 전격 교체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결단을 높이 평가했다.

에버라드 전 대사는 “북한이 군부의 자원과 예산을 핵 개발에 투입하자 군 지도부가 매우 반발했다. 평화 프로세스가 진행되면 군부 자원이 영향을 받으므로 군 지도부의 반발이 예상된다. 따라서 북미 정상회담 이전에 김정은 위원장이 군 수뇌부 3인방을 교체한 것은 선제적 조치였다”고 말했다.

디트라니 전 차석대표도 “김 위원장이 선제적인 조치를 취했다. 김 위원장과 비전을 공유하는 이들이 노동당뿐 아니라 군부 요직을 차지해 평화 프로세스로 나아가기 위한 튼튼한 기반이 마련됐다. 군부의 영향에 대해 크게 걱정할 필요 없다”고 분석했다.

한편 브라운 전 분석관은 “중국의 대규모 기업들이 군과 연계돼 있듯이 북한도 마찬가지이다. 평화 프로세스에 따라 북한 시스템의 효율성이 높아지면 북한 군부가 가장 큰 수혜자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톨로라야 소장은 “북한이 핵 개발에 박차를 가하면서 군부의 영향력과 전투력이 크게 축소됐다. 더욱이 군부 내에서는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고, 정권의 감시를 당하는 상황이라 쿠데타가 일어날 가능성은 적다”고 관측했다.

. 중국-러시아, 다자안보체제의 필요성 강조

톨로라야 소장은 “북미 양자회담은 취약한 면이 많아 충분한 지지가 필요하다. 주변 시스템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정치적 분위기가 바뀌어 붕괴하는 경우도 있었다. 북미 간 양자 합의가 와해되지 않게 신속히 다자체제에 입각해야 한다”고 다자안보체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러시아도 중립적 행위자로서, 그리고 조력자(facilitator)로서 역할을 해왔다. 1980년대 미소 군축협상에서 배울 만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미소 기술전문가들의 협상을 북핵 사례에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진징이 교수는 “북한과 미국이 북핵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는 없다. 북미 간 어느 정도 프로세스가 진전되면 동북아에서 동북아 다자안보체제가 수립돼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 향후 정보기관의 역할과 대북정보 수집 활동의 방향 제안

전문가들은 대체로 향후 비핵화 과정에서 정보기관이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부처 간, 각국 정보기관 간의 협력을 중시했다.

트레버턴 전 의장은 “일단 (비핵화) 프로세스에 대한 지식을 최대한 많이 축적해야 한다. 리비아 모델이 안 좋은 사례로 언급됐지만, 리비아 모델은 정보수집 측면에서 잘 진척된 좋은 사례다. 검증을 위한 모니터링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활동이 원활하려면 정보수집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메릴 전 실장은 “정보와 정책을 구분할 수 없다. CIA의 수장이었던 폼페이오가 국무부로 이동했듯이 정보기관과 부처는 정책과 관련해 많은 상호작용을 한다. 따라서 인력 낭비 문제가 발생하는 측면도 있지만, 백업 시스템이 있는 셈이므로 좋은 점이 있다”고 정보기관과 정부 부처의 협업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에버라드 전 대사는 “정보기관들과 외교관은 지속적으로 사실을 말해야 한다. 자신의 견해와 다른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의사결정자들에게 그대로 전달해야 한다”고 정보기관의 객관적인 역할을 당부했다.

디트라니 전 차석대표는 “마약 밀매, 사이버 테러리즘 등 국제조직범죄에 관해 정보기관들이 정보를 교환하고 안보를 강화하는데 북한과의 회담과 관련해서도 그런 식의 통합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카탈린 하르네자아 전 루마니아 해외정보부 부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모두 접근이 쉽지 않은 지도자들이라 정보 측면에서 상당한 난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저작권자 © SPN 서울평양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