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의 결별, 추원서, 남북물류포럼>

(추원서, 박사 경기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과거와의 결별

- 남북협력의 새로운 길로 나서야 -

2018년 6월 대한민국은 대전환의 시대를 알리는 역사적 사건을 함께 했다. 국내적으로는 6.13 지방선거, 국외적으로는 6.12 북․미 정상회담이 그것이다. 두 빅 이벤트가 주는 공통된 메시지는 무엇인가? ‘과거와의 결별’이다. 

이를 이해하기 쉽게 표현한 것은 놀랍게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센토사 정상회담 모두 발언에서 나왔다. “과거의 력사가 우리의 발목을 붙잡고 그릇된 편견과 관행들이 우리의 눈과 귀를 가리우기도 했지만, 그 모든 것을 과감하게 짓밟고 이렇게 이 자리에까지 왔으며 새로운 출발점에 서게 되었다.”

이번 지방선거는 ‘보수의 궤멸’로 끝났다. 하지만 진정한 의의는 지난 70년 한국정치를 지배하던 맹목적 반공 이데올로기, 그리고 50년을 작동하던 지역주의가 더 이상 선거용 무기가 될 수 없음을 일깨워주었다는 사실이다. 시대의 변화를 외면한 채 과거 패러다임에 안주하는 낡은 정치에 경종을 울린 것이다. 사실 진정한 보수주의란 자유와 풍요를 가져다주는 제도와 가치를 존중하면서, 인간에 대한 지식과 애정을 소중히 여긴다. 그리고 실천 덕목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내세운다. 

하지만 아쉽게도 오늘 한국의 보수 세력은 이러한 정통 보수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사회적 책임과 헌신을 내팽긴 채, 반공의식과 지역주의로 무장한 수구를 보수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지방선거 후 야당은 스스로의 성찰을 다짐했다. 올바른 정치발전을 위하여 보수의 재생 작업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한국의 보수 세력들이 보수주의의 원류인 영국을 다시 공부하면서 성찰을 통해 과거와 결별하고 보다 건강한 보수로 거듭나기를 많은 국민들은 원하고 있다.

북․미 정상회담(6월 12일) 후 양국 정상은 새로운 북․미 관계 수립, 지속․안정적인 평화체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노력 그리고 전쟁포로 유해 송환․수습 등을 담은 공동합의문을 발표했다. 핵심 구조는 북한의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해 평화체제를 보장하고 북미수교를 제공하는 것이다. 유해 송환은 신뢰구축을 위한 북한의 성의 표시라고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세기의 담판으로 평가받는 센토사 정상회담은 그 성과를 놓고 뒷말이 무성하다. 특히 미국 내 주요 언론과 정치권의 날선 비판이 눈길을 끈다. 

뉴욕타임즈는 “공동성명이 과감한 변화를 약속했지만 디테일이 부족하다”고 평했고, 워싱턴 포스트는 사설에서 “의문의 여지없이 싱가포르 회담은 김정은과 북한 정권의 승리였다”고 주장했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말로만 떠들었다'고 비판했다. 비판의 주된 이유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라는 표현이 빠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실 문안만 놓고 보면 비판은 일리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정상회담의 의미와 협상의 본질을 외면한 것이다. 센토사 정상회담의 의의는 70년 구원(仇怨)의 역사와 결별하고 새로운 관계를 구축키로 한 점에 있다. 

합의문 서명식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세상은 아마 중대한 변화를 보게 될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성명 발표 후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포기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아마도 날 싫어하는 사람만이 내가 별로 얻은 것이 없다고 주장할 것”이라고 반박하면서 김정은에 대한 좋은 인상과 기대감을 표시했다. 아마도 그는 사전접촉을 통해 김정은 위원장의 의도를 파악했고 첫 만남을 통해 이를 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는 승부사적 기질을 발휘하여 기회를 놓치지 않기로 결심했을 것이다. 관심을 끄는 것은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는 입장에 서있던 민주당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이번 북미정상회담이 의미 있다고 평가하면서 의회가 할 일을 해야 된다고 촉구한 점이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비록 김정은 위원장의 핵 포기 의지가 확인되었고 트럼프 대통령 역시 북핵 문제 해결을 최우선적 과제로 여기고 있지만, 북핵문제가 완전 해결되기까지는 숱한 장애가 예상된다. 특히‘핵 폐기 후 제제 해제’를 기본 입장으로 임기 내 가시적 성과를 원하는 미 트럼프 행정부와 ‘단계적, 동시적 조치’를 통한 확실한 체제보장을 원하는 북한의 입장은 자칫하면 파열음을 낼 소지를 안고 있다.

각론에 들어가 비핵화에 관한 이행과 검증 그리고 상응조치에 대한 합의가 난항을 겪을 경우 비핵화 프로세스는 중대한 난관에 봉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바로 긴밀한 의사소통을 통해 오해의 소지를 없애는 것이다. 그리고 되도록 빠른 속도로 비핵화 프로세스와 체제보장을 위한 조치들을 상호 선제적으로 실행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과거처럼 실무적 논의를 거쳐 합의하는 상향식(bottom-up) 방식보다는 최고지도자가 주도하고 실무자가 이를 뒷받침하는 하향식(top-down) 방식이 효과적일 것으로 판단된다. 적어도 양국이 문제 해결을 위한 본 궤도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이와 같은 방식이 필요하다. 정상외교를 활용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주도 하에 한미군사합동훈련의 조건부 중단이 결정되고 양국 간 핫라인 개통이 이루어지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너는 악이고 나는 선이다”라는 이분법적 사고로는 북핵문제는 해결이 어렵다. 1차 북핵 위기가 발생한 지 어언 4반세기의 세월이 흘렀다. 그간 국제사회는 몇 차례 문제 해결을 위한 기회를 놓쳤다. 상대를 불신하고 책임을 전가했다. 

4․27 남북정상회담과 6․12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마련된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절호의 기회를 살려야 한다. 끝으로 한반도 문제의 주인은 바로 한민족이라는 각오를 되새기면서 난마처럼 얽힌 북핵문제의 슬기로운 해결을 위해 남남갈등의 과거와 결별하고 남북협력의 새로운 길로 나서기를 바라는 것이다.@

저작권자 © SPN 서울평양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